[창19:1-11, 새번역]
18: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거기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이 정말 나에게까지 들려 온 울부짖음과 같은 것인지를 알아보겠다.”
25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성안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와 의인이 열 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렇지만 19장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공정하게 판단하시는 분이시며 의인이 겨우 몇 사람만 남았더라도 그들을 악인과 함께 멸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들을 악인으로부터 보호하시며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또한 믿음으로 그의 자손으로 삼아 주신 우리에게도 알려주신다.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주셔서 그로 하여금 그 심판이 임박한 그 성을 위해 중보기도 하게 하시고, 그 성에 아직 남아있는, 의인이라 칭해주실, 구원받을 백성을 찾으러 천사들을 보내신다.
18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고후 5장)
하나님께서 나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불러 구원해 주신 것처럼 나에게도 그리스도의 사절이 되라 하신다.
사절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그분의 종으로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는 자가 아니라 보내신 분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삶으로, 입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이다.
주님!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도 똑바로 서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렇게 허물 많은 자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덮어주시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려주신 복이 너무나도 크심을 깨닫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내게 부어주셔서 무감각한 나의 마음에 긍휼과 사랑이 흘러나게 하옵소서! 끊임없이 주님의 마음에 머무는 복을 내게 허락하옵소서!
어제 아브라함의 소돔에 대한 간절한 기도 이후
오늘 말씀은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소돔에 이른 천사들을 가장 먼저 보고 일어나
맞은 사람은 다름 아닌 롯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득 제 안에 질문이 하나 올라옵니다
"왜 롯은 저녁때가 되었는데
성문 어귀에 앉아 있었을까?"입니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고대 도시에서 "성문에 앉아 있다"는 표현은
장로, 재판관, 도시의 지도자들이 모여
재판하고 의논하는 공적 공간을 차지했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며
롯은 단순한 거류민이 아니라
소돔 사회 질서 안에 깊이 편입된 유력한 인사,
일종의 "성읍장로"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의 해석이 전통적으로 강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성문 근처에서 낯선 이들을 살피며,
나그네를 환대하고 보호하려 했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장막 문 앞에서 손님을 맞아
극진히 대접했던 장면이 오버랩되며
롯이 여전히 아브라함의 환대 전통을
이어가려 했음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롯은 악한 성읍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나그네를 지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이는 어찌 보면 "양 다리 걸친 의인"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그 집 대문 앞에 모여든 남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대문을 찾지 못하게 하시며 롯을 보호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새 옷을 갈아 입혀주셨던 장면입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려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 스가랴 3: 3-4 -
롯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공통점은
자기 힘으로 의로울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기도를
기억하시고 롯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더러운 죄의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옷을 입혀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앉아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저의 시선이, 마음이 향하는 곳이
오직 하나님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렇게 오늘도 세상에 머무는 시선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오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롯이 등장한다.
롯이 천사들을 집으로 모셔 대접하고 있을 때, 소돔 성 사람들이 몰려와 집 안에 있는 손님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롯은 그들을 보호하려 애쓰고, 마침내 천사들이 개입하여 롯을 보호하고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신다.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악한 상황들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신다.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시대가 점점 더 악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세상은 더욱 위협적으로 변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영적으로 둔하여 그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영적으로 너무 둔하여 주님을 볼 수 없다”는 찬양의 고백처럼,
주님, 지금의 제가 너무 둔한 것은 아닙니까?
저를 도와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매 순간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분별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천사가 소돔 성에 들어섰을 때, 롯이 그들을 집으로 맞아들여 정성껏 대접합니다. 밤이 되자 소돔의 남자들이 집단으로 몰려와, 두 천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려고 합니다. 롯은 욕정에 사로잡혀있는 그들을 막아서며, 심지어는 자기의 두 딸을 내어줄 테니 손님들에게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만류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롯을 밀치며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그때 두 천사는 롯을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 밖에 있던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소돔은 풍요롭지만 악이 만연한 도시였습니다. 롯은 스스로 그릇된 세상을 택하였기 때문에 결국 소돔성을 심판하러 온 주의 사자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롯은 천사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내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롯이 무법한 자들 속에서 살면서 어느새 그들의 가치관에 물들고 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타협이 아니라, 구별되어야 합니다.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악한 무리들이 아무리 강하여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롯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면 의로운 심령이 상하게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세상에 동화되어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길 원합니다.
불의한 세상을 멀리하여 악한 영향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적당히 타협하여 편안하게 살기 보다, 비록 불편하고 손해가 되어도 거룩을 택하는 구별된 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참고구절)
이는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 베드로후서 2: 8
[말씀묵상] 창세기 19:1~11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나그네를 선대하던 중동에서 소돔을 방문한 외지인(천사)들을 대하는 백성의 행태는 소돔의 죄악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한 성적인 타락과 동성애가 만연하는 풍조를 살펴보자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가리지 않는 인간의 뿌리 깊은 죄성과 마주하게 된다. 부끄러운 일 앞에 부끄러운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이러한 삶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종착역인 것 같아 마음 답답하고 불편하다. 나 역시도 그런 죄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이기에 주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추악한 죄악을 구별하는 영적인 안목을 주시고, 죄악된 길로 달려가지 않도록 은혜 내려 주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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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하나님, 매일의 삶 속에서 옳은 길과 옳지 않은 길을 판단하는 시험대에 오릅니다. 우선은 무엇이 하나님의 진리인지 깨닫게 하시고 그 길을 따라 걷게 하옵소서. 나의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아전인수하며 불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길 원합니다. 나에게는 의로운 것이 하나도 없음을 고백하오니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주시고, 행동으로 증명하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새로운 한 주간을 건강하게 출발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소돔의 죄악된 민낯을 보여주며 동시에 어느새 소돔과 동화된 롯 안의 죄악된 모습 또한 비추어 드러낸다. 아브라함과 동행하다 눈에 보기에 흡족했던 땅을 선택했던 롯은 그곳에서 그들의 문화에 젖어갔던 것 같다. 그 안에 나그네를 환대하려는 귀한 마음도 있으나, 문제를 만났을 때 그 땅의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자신이 영접한 나그네들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을 알았다면 롯은 자신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위기에 처한 롯을 구해준다. 그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폭도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한다.
성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여러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만난다. 많은 경우에 나는 여전히 내 방식대로 해결해보고자하는 마음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언뜻 옳게 생각되는 방법대로,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과거에 쭉 그렇게 해왔던 전통과 문화에 따라… 뻗어가는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먼저 구하기를 소원한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특권을 기억하고 누리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옆에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어두운 눈을 밝혀주옵소서. 내 뜻과 내 생각 내려놓고 주님 앞에 엎드리게 하옵소서.
소돔의 멸망을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롯에게 알리신다.
그러나 롯의 가정은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롯과 그의 가족의 손을 붙잡아 그 땅에서 이끌어 내신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사위들은 결국 멸망의 땅에 그대로 남게 된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다 알 수도 없고, 그 순간에는 더욱 깨닫기 어렵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롯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말씀 앞에 즉각 순종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그를 끝까지 붙들어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셨다.
주님,
제가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닫게 하시고 보고 듣게 하옵소서.
또한 제자반 집사님들 또한 섬김과 부르심의 순간마다
늘 깨어 반응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