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1:1-9, 새번역]
1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행2:8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사람 안에 교만으로 가득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그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자,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들을 말하는 것을, 각각 자기의 말로 알아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높이려는 인간의 교만한 계획을 헛되게 하시고, 그들은 각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의 유익을 위해 서로 다른 말을 하다가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흩어진다.
자신의 모든 지혜를 다 짜내고 오랜 시간을 들여 힘을 다해 큰 성과를 이룬 사람들도 잠시의 만족과 쾌락을 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남들 앞에 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사람은 모두 교만한 본성으로 인해 이 무너짐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주님이 직접 데리고 다니며 손수 발까지 씻어주시고 가르치신 제자들도 무너짐과 흩어짐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렇게 철저히 무너진 자리에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성령으로 다시 세우시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성령께서 내 마음의 눈을 밝히시며 성경을 깨닫게 하시어 나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대로 회복하여 주시기 위해 어떠한 사랑을 나타내셨는지 알게 하신다. 그 앎은 점점 더 내 안에서 깊어지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육체의 행실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심을 본받아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실 것이다.
9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사람은 교만으로 인해 그 삶이 혼란하게 되고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흩어진 자리,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시키시어 우리 안에 사시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해 가신다.
성령으로 세우신 그 하나님 나라를 교회라 하신다.
나는 교회이며,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마음이 흩어진 사람들을 모아 함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귀한 직분을 내게 맡기셨다.
오늘은 홍수 이후
인류의 시작과 번성하는 여정 중에
발생한 바벨탑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돌 대신
벽돌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흙 대신에 역청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던 때입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선포에 반하는 자신들의 성을 만들기 위한 일을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 사역의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목적을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겉으로 보여지기는 "연합"처럼 보이지만
각자 각자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는"
교만함과 탐욕, 욕심들이 모여
잠시 연합하게 된 일시적 하나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 창 11:4 -
같은 목적을 위해 잠시 연합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 목적이 달성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를 헐뜯고 적이 되는 지금의 시대와
많이 닮아 있는 듯 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전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기술의 발달에 대한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진화되고 발전합니다
지금도 최첨단 기술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 깊숙하게 이미 들어와 있는
AI 기술은 일상생활부터 학교생활, 직장생활,
교회의 여러가지 사역 가운데에도
이 기술을 활용하며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계속 발전하게 되면서
오늘 바벨탑 사건처럼 인간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혹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분명 어떠한 프로젝트들을 만들 것이며
그 프로젝트들은 점점 고도화 되고
사람이 통제 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될까
우려하는 소리도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최첨단 기술은
결국 두 축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그 하나는 고도의 바벨탑 건설 프로젝트를
하는 자들과
다른 하나는 이 기술을 사용하며
복음 전파의 길을 더 확장하고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 급속도로
전파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결국 기술의 발전이 아닌
사람의 마음 속 중심에 의한 사건이었음을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일 수록 더욱 분별해야 하며
더욱 하나님 안에 구별된 자들로
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붙잡아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말씀"뿐임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 안에서 분별하며
예수님이신 지혜를 구합니다
오직 그 지혜만이 우리를 사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 순간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는
저의 삶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벨탑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간 욕망의 탑,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의 상징이다.
“우리가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4절)
이 구절 속에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뭉쳐 스스로 힘을 키우고,
그 누구도 우리를 흔들 수 없게 하려는
인간의 교만한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씀을 묵상하며 내 안의 바벨탑을 바라보게 된다.
내가 욕망을 내려놓기 위해 가장 먼저 붙들어야 할 것은
말을 줄이는 것이라는 마음이 든다.
나 자신을 변호하고,
내 말이 더 옳다고 주장하며,
“너보다 내가 낫다”는 마음을 포장된 말로 드러낼 때
나는 어느새 바벨탑 꼭대기에 서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하나님,
제 안에 바벨탑을 쌓지 않기를 원합니다.
혹 이미 쌓아 올린 바벨탑이 있다면
주의 손으로 무너뜨려 주옵소서.
내 이름이 아니라
주의 이름만 높아지는 삶을 살게 하소서.
돌을 대신한 벽돌, 진흙을 대신한 역청은
건축기술의 발전을 묘사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대신한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고자하는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외부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하나님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세상에서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구원이요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든든히 붙잡기를 기도한다.
[시18:1-3]
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말씀묵상] 창세기11:1~9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서 사고를 하기 때문에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인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결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집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지 못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오히려 그것은 재앙이 되고 만다. 본문에서 유독 '하늘에 닿게 하자' '우리 이름을 내고'고에서 눈이 머문다. 내가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오르려는 그 모습은 그들만의 교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도 내재되어 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언제라도 튀어 나오려는 불손종과 교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날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 외에는 방법이 없다. 바벨탑 사건 역시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기보다 나의 행동과 생각을 단속하여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좋은 본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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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어리석음과 나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교만한 마음을 제하사 우리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순종하며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좋은 날을 주셔서 숨쉬며 살게 하시고, 동행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서로 말하되.....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시날 땅 들판에 정착한 사람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성읍과 하늘에 닿는 탑을 건설하여 온 땅으로 흩어지는 것을 피하려 합니다.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탑을 쌓을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하자 그들이 과학문명에 도취되어 자기 이름을 높이려 하였습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
언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려고 탑을 쌓는데 하나 된 이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으로 바벨탑 건설을 중단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어 버리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교만과 욕망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바벨탑은 하나님 대신 자기 이름을 높이려고 쌓았습니다. 인간이 눈이 밝아지려고 금지된 선악과를 먹어도, 흩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바벨탑을 쌓아도, 우주를 왕복하고, 생명공학이 발전하여 수명을 연장하여도 우리는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 조금도 다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 허락하신 경계를 넘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내가 비록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주의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곧 나의 바벨탑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멸망하는 바벨탑을 쌓는 일에 참여하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바벨탑이 무엇인지? 살피고, 발견되면 그것들을 스스로 즉시 허무는 영적 민감함을 허락해 주옵소서.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게 하옵소서.
5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하신다.
여기서 보려고 내려오셨다는 말씀이 참 생경하게 다가온다.
가까이 세밀하게 우리를 살피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시어 주님의 존재를 알리시는듯하다.
인간들이 자신의 힘으로 신의 영역에 닿으려 하는 이 어리석은 모습 한계가 없는 존재에게 한계로 도전하는 모습
그들의 탑 꼭대가 아무리 높을지라도 여호와의 하늘아래 있음을 몰랐던 것이다.
오늘의 묵상 말씀 속에서 주님이 창조하고 번성시킨 인간을 흩으심 언어를 나누고 그로인한 경계를 만드심은 주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든다.
즉 흩어짐으로 세분화되어지는 것이 인간에게 오히려 유익하기 때문인것이다.
크고 방대한 것이 주는 힘보다 작고 연약한 것에서 나오는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은
언제나 낮은곳 힘없는 사람들 적은 재료를 시작으로 일하신다.
그것은 다시말해 주님의 능력이 닿으면 보이는것이 다가 아니며 창조된 피조물들은 결국 유한하니 무한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함을 말씀을 통해 보이셨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과 열심이 나의 재산과 통장 잔액으로 보여진다고해서 완성되는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큰길을 만드시는 주님이심을 내안에 완전하게 받아 들이기 원합니다.
나의 불안과 근심은 보여지는것에 마음을 둔 까닭입니다. 주님 내려오셔서 나를 보시고 나를 주님의 손길로 선하게 흩으소서
우리 안에 많은 찌꺼기들을 제거 하시고 오직 정금같은 마음과 주님을 향한 사랑만 가득하게 하소서
교만의 상징 중 하나인 바벨탑
그 원인이 하나의 언어를 사용해서 나오고
이 교만을 보시고 내려와 다른언어와 다른지역
으로 흩으시는 여호와!
어찌 보면 야박해 보인다.하지만 죄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리마인드한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죄다.
창조물은 창조자에게 따라야 한다.
이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나의 교만은 어디서
오는가? 언어인가 재물인가 자녀인가
신앙인가. 묵상케 하는 아침이다.
아마 모든 항목이 교만일것 이다.
교만이 죄임을 상기 시키는 아침이다.
우리의 단합이 바벨로 결론이 않키를 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