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40:1-13, 새번역]
1 주님, 악인에게서 나를 건져 주시고,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4 주님, 악인에게서 나를 지켜 주시고,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호하여 주십시오.
다윗은 자신을 헤치려는 악인의 계획을 눈치챈다. 악인들은 날마다 모여 은밀하고 치밀하게 그를 헤칠 계획을 세우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는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만 나의 방패로 삼는 다윗에게 그들이 무의식중에 뱉는 날카로운 혀의 말과 뱀처럼 간교하게 달콤함 속에 숨겨진 독을 알아채게 하신다.
다윗은 감정에 휩싸여 행동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대로 그들이 몰래 놓은 덫과 올가미, 그물과 함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자처럼 피하여 그 자리를 모면한다.
그는 괴로운 마음을 하나님께만 쏟아놓으며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를 잠잠히 기다린다.
7 내 구원의 힘이신 주 하나님, 전쟁을 하는 날에 주님께서 내 머리에 투구를 씌워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전능자를 끊임없이 바라보는 구원의 소망으로, 전쟁 중에도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노래한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는 주님을 깊이 경험한다.
그리고 이제 그는 안다.
악인의 욕망과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나를 에워싸고 퍼붓는 재앙이 그들에게 되돌아 가게 될 것이며, 그들의 악을 내 손으로 갚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그들 머리에 뜨거운 숯불을 쌓게 하셔서 그들로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실 놀라운 계획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13 분명히 의인은 주님의 이름에 찬양을 돌리고, 정직한 사람은 주님 앞에서 살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지혜로 행하시는 일은 우리 모두를 선한 길로 이끌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그 깊으신 뜻을, 우리 가운데서도 이루어 주옵소서!
주님! 이 악한 세대에서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의 이름만을 높일 의인들을 날마다 더하여 주옵소서!
[말씀묵상] 시편140:1~13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교만하고 포악하며, 악한 자들은 시대에 관계없이 존재하고 이런 이유로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우리의 행동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위협을 받거나 어려움에 처하는 일은 여전히 있습니다. 시인은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앞에 구원의 능력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능력의 하나님은 악인과 포악한 자들을 몰락시키시고 의인들을 승리로 이끄십니다. 나는 시인처럼 닥친 고난 앞에 주님 앞으로 달려나가기를 힘썼는지 돌아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심경을 토로하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을 의지했는가 생각해 봅니다. 닥친 어려움 앞에 나의 좁은 시각에 갇혀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끝에서 설익은 믿음을 감싸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자녀의 어려움이 나의 어려움이듯 나의 어려움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 감당해 주십니다.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가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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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하나님, 악인의 위협 앞에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토로하고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는 시인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상황과 생각을 모두 다 아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씀으로 세상의 고난 앞에 당당히 맞서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주님의 일하심을 목도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붙드시는 주님을 힘입어 살렵니다. 동행하여 주옵소서.
신소영 집사님의 묵상인을 통해 악인또한 주님의 계획 안에 내곁에 두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집니다. 다윗의 고난과 광야같은 삶속에 다윗의 곁에서 그를 위협했던 많은 악인들 또한 다윗을 더욱 정금 같이 단련하고 여러 상황 속에서 예측할수 있는 변수들을 대처하는 지혜를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혜의 왕이 될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아버지의 지혜를 어릴때부터 들으며 자랐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부모가 아이의 모든 상황을 통제할수도 없고 아이들의 이성이 제대로 자리잡아 성장시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어려운지가 느껴집니다. 지나친 통제는 아이들로하여금 창의력을 떨어뜨릴수 있다고 생각했고 본인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기를 기대했던 어쩌면 더 어려운 양육을 해왔는데 막연하게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주님이 모든것을 책임질거라는 방종은 아니였나 되돌아봅니다.
38년된 병자가 누운것을 보시고 그의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 먼저 그에게 다가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는 장면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임하심은 전적으로 나의 열심이 아님을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성령이 어디서 올지 모를 바람처럼 우리에게 임하시지만 주님이 나를 택하시기까지 나에게는 소망이 있어야 함을 또한 자각합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이 누구신지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기 알기 원하는 소망이 있었으며 병자는 자리를 들고 일어나 세상으로 걸어나가길 소망했기에 주님이 긍휼함으로 다가선것입니다.
주님 나의 가정과 생업속에 환난을 주심도 주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내삶의 모든 과정을 주님이 디자인 하시고 나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주님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되시고 나의 기업의 비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악인들로 인해 분별함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어 마침내 정의를 베푸시는 주님과 승리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진실로 의인들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들이 주의 앞에서 살리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