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9:24-38, 새번역]
주님께서는 마음 속에서 뜻하신 바를 시행하고 이루실 때까지, 그 맹렬한 진노를 그치지 않으신다. 마지막 날에야 너희가 이것을 깨달을 것이다. (렘30:24)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죄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에 맹렬한 분노를 쏟으실 때,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다.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여 내시어 세상에 섞여 살던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고, 소알성으로 도피한 롯은 두려움이 사로잡혀 두 딸과 산으로 숨어 들어가 수치스러운 방법으로 자손을 남긴다.
롯에게는 자신을 아껴주고 보살펴 줄 아브라함이 가까이 있었는데도 그를 찾아가는 대신 두 딸과 함께 굴에 숨어 사는 길을 선택한 롯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은혜로 큰 환난에서 건짐을 받았지만, 고통 중에 있던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보면 생각과 마음속에서 그 고통은 반복되고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두 천사를 통해 소알성은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롯은 그 성에 당장이라도 유황과 불이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두렵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에서 헤어나 올 수 있는 길은 오직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를 구원하신 분에게는 항상 나를 위한 또 다른 길이 예비 되어 있다.
그 길은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요 내게 남은 상처의 흔적조차도 예수님의 손과 발, 옆구리에 남은 상처처럼, 다른 사람의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갇힌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귀한 예수의 흔적이 되게 하신다.
쓰라린 상처마저도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실 분이 나의 주님이시며, 그분의 피 묻은 손으로 나를 위로하시고, 그분의 피 묻은 발로 앞서가시며 내게 길을 내어주신다.
주님! 내게 남아있는 흔적들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 동안 내게 남겨주신 이 흔적들로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게 하시고 세상에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 나의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롯이 소알을 향할 때, 하나님께서 정욕과 폭력으로 물든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셔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롯은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산에 올라가 동굴에서 겨우 생계를 이어갑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의 행실을 보면 하나님께서 롯을 살리실 이유가 하나도 없었는데 오늘 그 이유를 발견합니다. 롯의 구원은 그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아브라함 덕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람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일상의 리듬 속에서 하나님을 먼저 찾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롯의 두 딸들이 술 취한 롯을 대상으로 후손을 얻었고, 이들은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동성애와 근친상간이 공공연하던 소돔의 영향 때문에 롯의 두 딸들은 그 행위가 악한 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후손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었습니다.
롯은 결국 성경에서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로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며 말씀 속에서 롯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을 떠나 죄악이 만연한 도시를 택하여 살았고, 그 역시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또한 거룩을 잃어버린 부모 밑에서 자란 그의 자녀는 약속의 자녀가 아닌 소돔의 자식으로 자라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롯이 아닌 아브라함의 삶을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에 합당하게 기도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길 수 있도록, 나의 일상의 삶이 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은 묵상 하는데 2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묵상시간을
풍성히 가질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소돔과 소모라를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판의 장면, 롯의 아내의 소금기둥 사건
뒤에 나오는 3절의 말씀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만 아는 스토리"에
덩달아 감동과 은혜가 넘치는 아침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웅기 가마의 연기 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 창 19:27-29 -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했던 그곳,
그리고 그의 눈으로 바라본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증거, 그 연기를 바라보던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최소한 롯은 구원해 주셨겠구나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감사 기도를 드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자신의 사촌동생 롯의 생사를 알았으며
하나님과 자신만 아는 스토리가 묵직하게
그의 마음 깊이 자리 잡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만 아는 스토리가 쌓여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즉, 그 스토리들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깊이와 비례 되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 향유 옥합을 깨서
예수님께 부었던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자신의 오빠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겪으며
그리고 마르다의 불평에도 예수님께 시선이
고정되어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그녀는
여러가지 상황 가운데 예수님의 죽음을
감지하고 자신에게 시간이 별로 없음을 느끼고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렸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에 그 여자를 책망하는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 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 막 14:6 ~8 -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마리아가
얼마나 친밀한 관계 였는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오늘 소돔의 심판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했을 아브라함이나
자신의 오빠의 죽음과 부활,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했던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음을 감지했던 것 처럼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던
믿음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만 아는 스토리!가 더 풍성해지기를
소망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저의 남은 삶의 여정에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로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롯은 두 딸과 함께 죄의 땅에서 나와 동굴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이후 두 딸은 후손을 잇고자 하는 두려움 속에서 아버지를 통해 죄를 짓게 된다.
노아도, 롯도 술에 취함으로 인해 자녀들이 죄를 짓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행실과 마음가짐으로 인해 내 가족이, 내 자녀가 죄의 길로 옮겨질 수도 있겠구나.’
주님,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 내가 눈을 뜨고 숨을 쉬며, 공동체와 함께 예배드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더욱 깨어 있고, 세상에 취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창 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롯은 결국 아브라함의 은혜로 소돔과 고모라가 멸하는 와중에 살아 남는다. 아내도 소금기둥이 되어 죽고 사위도 재산도 모두 잃지만 두 딸과 함께 살아 소알에서 나와 굴속에서 살게된다.
그리고 또 그들의 지혜로 자손을 이어나간다. 롯의 눈에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소돔도 비옥함이 그 눈을 가리우고 좋은 것만 인간의 눈으로 보게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롯의 열심으로 추구한 결말은 참혹하고 비참하다. 딸에 의해 모압'과 '암몬'이라는 후손을 낳게 되는데, 이들은 훗날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대립하는 민족이 된다.
오늘 롯의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욥의 상황이 떠올랐다.
두사람 모두 부요했던 재산과 가족을 잃었지만 롯과 달리 욥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라며 하나님을 놓지않았다.
반면 롯은 천사들의 이끄는 손에도 머뭇거리며 주저했고 결국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동굴로 숨어들어간다.
똑같이 주님이 이끄시고 인도하셨지만 자신의 열심으로 채운 결과일수록 자신의 의지로 손을 놓기가 힘든것이다.
욥이 가진 모든 것은 본인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욥은 그 모든것을 주님께 맡기며 거두신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사람의 지혜가 아닌 믿음으로 울부짖으며 괴로워했다.
하나님의 지혜를 인간의 해석으로 모두 이해 할수 없음의 괴로움 이것은 나의 것을 모두 앗아 가심에서 느끼는 허탈감과는 다른 괴로움이리라
주님 우리는 영원하자도 않을 세상을 살면서 자꾸만 영원히 살것처럼 수고하고 애쓰며 나의 삶의 많은 것을 붙잡으려고만합니다.
주여 부디 우리의 이런 우매함을 주님의 지혜로 다스리시고 우리가 사소한 세상의 것에 눈이 멀어 정작 중요한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행치않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이 주신 재정과 만남을 나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바라보며 나의 상황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하루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심판 앞에 두려워 떨지 않을자가 누가 있을까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떠하냐에 따라
나의 반응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심판의 순간에도 놓지 못한 그 미련이 롯의 아내를 소금기둥으로 만들고 말았고
두려움 때문에 소알로 가고자 했으나 또다시 두려움 때문에 산 동굴로 도망한다. 롯의 두 딸들은 자신들이 믿는 방식대로 행동하며 후손을 얻고자
천륜을 저버린다. 심판의 순간 롯의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다. 미련이, 두려움이, 자기의 방식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심판의 순간에도 아브라함을 기억하며
롯과 그 가족을 내보내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선택으로 그 구원의 길에서
또다시 죄악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미련이, 두려움이, 나의 방식대로 사는 삶이 나를 사로잡아 그 자리에
주저 앉히려 할 때 하나님을 보게 하옵소서.
환란의 때에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던
여러 시편 기자들의 고백이 동일한 나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시는 주님을 붙들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