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에는 유월전 전에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행하신 "세족식"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요 13:1)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5년전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여성 목사님께서 저에게 안수기도를
해 주셨던 장면이 오늘 이 말씀을 읽으면
다시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그분의 기도가 끝나고
신비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알수 없는 눈물 가운데
제 마음 깊은곳에서 세미하지만
분명한 음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소영아 내가 너를 끝까지 사랑한 것 같이
너도 끝까지 사랑해랴"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저 뜨거운 눈물이 제 뺨을 흘렀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저의 이야기가 된 후
저는 예수님의 사랑이 실재가 아닌 "실제"가
되었기에 저를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음성에
한없이 눈물만 흘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비로소 그 말씀의 의미가 제 안에 깨달아집니다.
저에게 "끝까지 사랑해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저에게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라"
라고 이해되어졌기 때문입니다.
늘 기도에 대한 갈급함이 저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그분의 뜻을 알고자 하는 제안에 갈망이
참으로 오랫동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제 나름대로
기도를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 3월부터 저에겐
두가지 도전을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달 성경1독과 중보기도학교 훈련입니다
몇일 전 욥기 말씀을 읽다가 중보기도의 비밀과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어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욥 42-10 -
결국 욥의 중보기도는 하나님께서
욥을 회복시키시기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중보하는 것이 어쩌면 헌신과 수고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결국 가장 큰 유익은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 요 13:16-17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겸손과 섬김의 사랑이
제자들의 삶에 나타날때 그들에게 복이 될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과연 이 복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가질 뿐 아니라
그 생명을 나누는 그야말로 가장 귀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땅에서도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생명"은 어떠할 까 싶습니다
요즈음 저에게 말씀과 기도에 대한 도전을 주신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
5년 전 "끝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의미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라"라는
의미로 깨달아집니다.
전혀 변할 것 같이 보여지지 않더라도,
이 땅에서는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아침입니다.
순종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오늘 저에게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바로 예수님의 겸손한 섬김의 사랑이
어떠한지 깊이 맛보게 되는 삶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그 기대와 설레임으로 한주를 시작합니다
[요13:1-17, 새번역]
예수께서는 자기가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를 아시고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직접 대야에 물을 담아오셔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주님께서는 이제도 허물 많은 나의 발을 그분의 말씀으로 또 그 말씀에 반응하는 나의 눈물로 씻어주신다. 성령께서는 원수 마귀가 내 마음속에 넣어 준 생각들을 그대로 뿌리내리게 놓아두시지 않고 말씀으로 비추셔서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생각하게 하신다.
8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다른 지체가 힘겨운 일을 겪고 있는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함께 아파하며 어떻게든지 힘이 되어주려고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하면서도, 자기의 짐은 나눠지고 싶어 하지 않는,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어 하지 않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음도 보게 된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사랑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다. 내가 내보이고 싶지 않은 연약한 모습까지도 나눠줄 때 전에 느끼지 못했던 친밀감이 ‘우리 사이에’ 접착제같이 생긴다. 그래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일도 몇 마디 말만해도 “우리 사이에”라며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이 되고, 서로의 다른 성향을 알게 되며 이해하게 된다.
7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또 지금 조금 알았다고 해서 계속해서 변화하는 가운데 있는 인격과 인격 사이의 앎은 그 당시만의 앎에 불과함도 관계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서로를 계속해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벽이 많았던 나를 변화시키시는 분은 주님이시고, 늘 옆에서 함께하게 하시며 서로 사랑의 빚을 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가족들이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
주님!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다 아시면서도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그 마음을 우리에게도 부어주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님 안에서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앞두신 마지막 밤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당황한 베드로가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거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 장면은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는 복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고 반드시 예수님의 씻으심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섬김과 봉사는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방식으로 낮아지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오래전 오늘 본문의 장면을 재현한 '세족식'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발을 씻어주는 것이 민망하고 어색했지만 예수님이 행하신 참뜻을 생각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그때의 감격은 사라지고 또다시 높아지고 섬김 받으려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 섬김의 완성이 십자가 사랑이었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말씀 앞에서 또다시 결단합니다. 예수님처럼 낮은 모습으로 섬기며 살겠습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종의 자리로 낮아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본을 따라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성경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중의 하나인 세족식의 말씀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봅니다.
낮고도 낮게 오시어 하늘뜻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행적은 겸손과 사랑 온유함의 끝을 보여주십니다.
곧 나에게 등을 돌릴 이에게 까지 허리를 숙여 발을닦으시는 예수님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날마다 나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사랑 그럼에도 그사랑에 감동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들을 회개합니다.
주님 끝까지 주님만 사랑하며 살수있도록 나의 삶 속에 좌정하소서 주님의 사랑만이 이 모든 문제의 답이될것을 믿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게되는 하루 입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하는 이 마지막 순간 어떻게 보면 사역의 정점을 찍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 순간에 주님은 왜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을까?
마귀를 제압하는 법이나 기도하는 법 능력을 행하는 법이 아닌 발을 씻기시는 초라한 행동으로 본을 보이셨을까?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주와 선생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섬김을
그 마음을 다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에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 사랑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났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주와 선생이신 분이 종의 자리로 내려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제자들을 향한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면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크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끝까지,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고개를 높이 들고 살아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내가 지금까지 세워 온 것들을 마치 내 힘으로 이룬 것처럼 마음에 힘을 줄 때가 많았음을 돌아보게 된다.
예수님은 발을 씻기신 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보여 주신 섬김의 모습을 기억하며 나 또한 삶의 자리에서 몸을 낮추어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주님, 끝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을 잊지 않고 삶으로 실천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