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성을 거슬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참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참을 수 있어도 그 일들이 되새김질하듯이 자꾸 생각나면서 부정적인 감정과 연합하였다가, 차츰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기폭제에 의해서 언제 수면 위로 올라올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수시로 우리의 생각 속에 이런 가라지들을 뿌린다. 가라지들은 우리의 연약한 마음속에서 왜곡되고 과장되게 부풀면서 깊게 뿌리내린다. 나를 병들게 만드는 이런 일을 우리는 노력과 의지로 막아낼 수가 없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계시면서 나의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시도록 내어 맡겨드려야 한다. 그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나와 똑같이 연약한 사람 앞이 아니라 가장 안전한 주님 앞으로 나아가, 시편의 기자들이 쏟아낸 것과 같이 속에 있는 것들을 아뢰며 다 토해낼 때 주님의 치유가 시작된다. 중한 병일수록, 의사의 처방에 따라 꾸준히 약을 먹고 다시 검진하며 예후를 보고 그에 따라 다른 처방을 받아오듯이, 계속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 나의 쓴 뿌리가 치료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의탁할 때 위로자 되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나와 영원히 함께하시며, 주님의 상처로 나의 상처를 싸매어 치료해 주실 것이며, 주님의 상처가 우리의 자랑이 되듯이 나의 상처 또한 내 삶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간증이 되게 하실 것이다.
17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우리는 주님께 붙어있으면서도, 각자의 상처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다가, 주님의 은혜로 주님께 내어 맡기고 치료하심으로, 주님을 닮은 성품의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해, 우리 각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진리의 영으로 말씀을 비추시며 우리를 손질하신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곁가지들을 잘라내는 그 일 또한, 힘겹게 싸워보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주님께 맡겨드림으로, 그 경험들을 통해 순종을 배운다.
20 그 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 사이에도 솔직한 나눔이 있어야 마음으로 가까워지듯이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김으로 주님과의 사귐이 깊어진다. 주님과의 사귐을 통해 주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게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시는지 알게 된다. 너무 아픈 일조차도 주님의 성품을 닮도록 내게 선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게 될 때,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거짓의 아비가 부추기는 대로 바로 반응하지 않게 된다. 내 안에서 작동되는 두 가지의 욕망을 더 뚜렷하게 분별하며 육신의 생각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주님 안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이 상황들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주님을 드러내시는 시간이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깨닫는다.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인 것이다. 육신과 마찬가지로 영도 성장통이 없이는 성장할 수 없는데, 나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리지 말고 순종으로 주님께 내어 맡길 때,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내 안에서 일하시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나를 다듬으실 것이다.
주님! 주님께 나를 의탁하오니 내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나에게 계속해서 이루어 주옵소서!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어제 새 계명을 주신 후
제자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남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약속 전에 수반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14:15)
문득 제 안에 질문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일까?"
믿음이 있다고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닌 듯 하고
사랑만 있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또 아닌 듯 한
애매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던 시간들을
지났으며 여전히 그 연장선 상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자문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앎"이 있을때
가능한 것임을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 앎이란 그냥 이름, 얼굴, 사는곳 등에 대한
보이는 것 이상의 것임을 누구나 아는바 입니다
겉 모습만 보고 감정에 속아 사랑하게 되면
때론 큰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언젠가 광화문 교보문고에 붙어 있었던
글귀가 떠오릅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체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라는 문구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 그 글귀에서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 앎은 피상적인 앎이 아니라 "인격적 앎"으로
상대의 마음과 삶의 중심 깊은 속에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어떠할 까 생각해 봅니다
결국 사랑이란 상대방의 삶의 중심 가운데
기꺼이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 역시
그분의 삶의 방식 안에 함께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마음의 결단은 순종으로 나타나며
그 순종은 비로소 깊은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께서 거하시게 되는
비밀의 통로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앞서 질문했던
나는 언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지난 날들의 말씀 앞에 거하며
울고 웃고 부르짖었던 그 시간속의
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말씀"속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되어지는
하나님을 맛보고 누리는 가운데
저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마음이 싹트고 그 사랑은 저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흘려보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아주 조금씩
순종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깊은 순종,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원하시며
그 삶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순종이 아님을 아시기에
순종 하고자 몸부림치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예수님 닮은 삶으로 더 깊은 사랑이 어떤 것인지
맛보게 해 주시려고 "보혜사 성령님"을
선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성령님이 거하시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을 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시기 때문임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됩니다
오늘도 제 안에 계신 성령님께
저를 전적으로 내어드리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어제보다 더 깊은 사랑을
맛보고 누리며 살게 되는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예수님이 제자들 곁을 떠나셔도 관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씀하십니다. 진짜 사랑은 순종하는 삶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고,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떠나시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진리를 분별하게 하시고 순종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예수님이 떠나심으로 고아와 같은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부활로 다시 오셨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마지막 때에 재림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와 소망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멀리 떠나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깊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살아가는 주님과 연합된 존재입니다.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주님 없이 살아가는 고아가 되지 않겠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심을 날마다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입술로만 고백하지 않고, 삶으로 사랑을 나타낼 수 있도록 성령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제자들을 두고 떠나시는 예수님은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겠다”(요 14:18)는 말씀처럼, 주님은 떠나시는 것이 끝이 아니라 성령으로 계속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또한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라”(요 14:15) 하시며 사랑과 순종의 삶을 강조하신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가 문득 어린 시절, 엄마를 기다리며 놀이터 그네에 혼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그 공간에서 외로워지려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따스함이 다가오던 그 느낌이 생각난다.
그 장면은 마치 보혜사 성령으로 내 안에 찾아오셔서 함께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닮아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오늘도 내 삶 가운데 임한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주님과 함께하는 이 삶 속에서 외로움이 아닌 동행의 기쁨을 누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 가운데 기다린다.
주님, 주님께서 주신 계명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고, 보혜사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시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옵소서.
[말씀묵상] 요한복음 14:15~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계명은 복잡한 율법이 아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행위로 이어지고 이 행위가 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적용하면 예수님의 계명은 이해하지만 행위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향해 '진정 니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맞니?' 라고 물으신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공생애 기간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끊임없이 실천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살펴보며 그 길을 온전히 따르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내 자신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보헤사, 셩령님께서 우리 속에 계심을 알기에 성령님을 의지하여 계명을 지킴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사랑의 예수님, 주님의 말씀처럼 계명을 온전히 지킨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사랑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를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행하신 것을 배운 그대로 실천함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게 하옵소서. 지난 한 주간도 은혜로 동행하심에 감사드리며, 오늘 하루도 주님의 자녀로써 선한 빛을 발하는 그런 한 날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유대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는 유대땅에만 머물지 않았다.
온세계, 시간을 넘어 주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임마누엘을 약속하시는 예수님...
창세기3장15절이 신약에서 다시 선포된 것 같다.
이스라엘과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관한 내가 이 복음과 상관있다는 것이 새삼 감격스럽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고아 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겠다. 기댈 곳 없이 외롭게 두지 않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내가 열어놓은 그 길, 네가 걸어가야 할 그 길 또한 너 홀로 걷게 두지 않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주님, 당신과 함께 한 제자들과 유대인들의 눈이 어두운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두운 나의 눈을 밝혀 주소서.
실로암 못에 가 씻어 밝히 돌아온 맹인처럼 날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누림으로
밝아진 눈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순종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