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5장은
누가 몇 살에 누구를 낳고, 얼마를 살다가 죽었더라라는 말이 반복된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죄의 결과인 ‘죽음’이 세대를 거쳐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이어지던 족보 가운데, 에녹이 등장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24)
에녹의 삶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록된 내용이 많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8~900년을 살다가
‘죽었더라’로 마무리된 삶을 산 것과 달리,
에녹은 상대적으로 짧은 약 300년의 삶을 살았지만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로 갔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은
삶의 길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 바라보게 한다.
하나님,
에녹의 삶이 어떠했는지 제 마음이 깨닫게 하시고,
그 삶을 저 또한 살아내길 원합니다.
저를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그 숨결을 잊지 않게 하시고,
제게 생명을 주시고 다시 주께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에서 셋을 거쳐 노아까지 10대에 이르는 아담의 계보가 소개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의미를 발견합니다. 첫째, 아담의 계보를 기록할 때 모두가 아니라 필요한 인물만을 선택하여 믿음의 계보를 기록하였습니다. 둘째, "그는 000세를 살고 죽었더라"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계보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과 홍수의 심판 가운데 구원을 받은 노아와 같은 인물이 배출되었습니다. 이 계보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집니다. 지난해 저에게 가장 감사했던 일은 '손녀의 유아세례'입니다. 저로 시작하여 삼대째 믿음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믿음이 다음 세대에까지 잘 이어져 후대에 노아와 같은 위대한 인물이 세워지길 소원합니다.
저의 가정이 믿음의 명문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에녹처럼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살게 하여 주옵소서.
(참고구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2)
오늘은 어김 없이 찾아온
신장 정기 검진일입니다
새벽에 운전하며 찬양을 들으며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채혈 대기 중에 이렇게 오늘 묵상 글을 씁니다
말씀 본분에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시작하신
아담의 계보가 나열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계보를 대하는 저의 마음이 달라졌음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이 계보가 저에겐 더 이상
남의 족보의 이름의 나열이 아닌 하나님께서
세워서 친히 인도하여 가시는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이 그 이름 하나 하나에
담겨져 있음을 알기에 이름이 가지는 무게가
얼마나 묵직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 인물 중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인물은
유명한 모세, 다윗, 요셉, 사무엘,
느혜미야 등이 아닌
몇 줄 안되게 기록되어 있는 에녹입니다.
언젠가 저도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다
하나님께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던 적도 있으니 말입니다.
단순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개념보다는
그만큼 하나님과 가장 친밀했던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의 껌딱지로 살고 픈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득,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장례식장에 유일하게
그 고인을 나타내는 것이 "이름"이며
가족의 이름, 자손의 이름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그사람을 영정 사진과 이름으로
유추할 뿐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정보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그 우여곡절이 담긴 모든 삶은
죽음 뒤 이름으로 대체 되어 진다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아침입니다
그렇게 이름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기록된 아담의 계보에 나온 이름들이
제 마음에 더 깊이 내려 앉습니다.
계보를 보며 그동안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영정 사진과 함께 놓여진 "성도"가 붙어 있는
위패들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세상에서는 이름을 "명예"라는 의미로
사용하지만 진정한 명예를 가지고 떠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삶임을 깊이 새기게 됩니다.
언젠가 저의 호흡이 끝나는 그날,
저의 모든 삶을 대표하는 한마디가
"하나님과 동행했던 신소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저의 이름도 하나님이 사랑한 딸로
이땅에서 마침표가 찍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 창 5:23-24 -
[창5:1-32, 새번역]
22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아담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가인은 장자였지만 아담의 계보를 잇지 못하고 둘째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셋이 그 계보를 잇는다. 계보에는 장자들의 이름만 기록되어 있는데 노아의 아들들은 그 이름이 다 기록되어 있다.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세 아들들, 셈, 함, 야벳과 그들의 자손에게 직접 무지개 언약을 세우시기 때문인 것 같다.
계보에는 장자를 낳은 뒤에, 몇 년을 ‘살면서’ 아들딸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에녹은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고 하신다. 아들딸을 낳고 기르는 삶, 이 땅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이며, 삶이 예배가 되는 하나님과의 동행은 끝이 없고 영원으로 이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1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내 삶의 모든 순간에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창조된 본래의 모습대로 회복시키시기 위해 내가 미처 헤아릴 수 없는 그분의 높으신 지혜로 내 삶에 역사하고 계신다.
때로 그 모습은 일상의 평화를 깨는 큰 고통으로 찾아와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게도 하지만 자기를 쳐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들어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내 안에 만들어내실 것이며 그 성품은 감정에 매여 요동치는 사랑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여겨졌던 그 사랑이,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분이 다 이루신 것 같이 내게도 이루어질 것이다.
표적을 구하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게 예수님이 보이신 가장 큰 표적이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는 것이었듯이 우리 삶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은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될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주님! 그 일을 내게 이루소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놀라운 일이 내게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내가 허물 가운데 앉아서 간구하나이다.
평균 900세가 넘은 아담의 계보 10명의 이름과 그의 수명이 이어지고 죽었더라로 끝이난다. 아담과 하와의 죄로 우리는 결국 모두 죽을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시는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을 나이 천수에 가까운 969세까지 살았던 므두셀라도 결국은 죽음을 피할수 없었다. 주님 주신 생이 다할때까지 살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삶 죽음과 천국 그 사이를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내 삶이 다할때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지 끊임없는 주님의 일하심으로 나와 마주하신다.
그 가운데 에녹은 상대적으로 365세의 짧은 삶을 살았음에도 하나님과 동행하시다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가졌다고 하신다.
과연 나의 삶도 주님과 동행한 삶으로 그 마침표를 찍을수 있을까? 그렇다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무엇일까? 아침에 눈을 떠 묵상 말씀이 궁금해지는 지금의 내 모습 문득 돌아보니 몇년전에는 상상도 할수 없었을것 같다. 나의 마음을 만지시듯 말씀으로 나의 삶과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는 시간, 출근 준비로 아이들 등교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묵상말씀을 눈에 담기 원하는 나의 몸부림 주님과의 동행은 나의 별거 없는 이 몸부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도같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책상위에 깨끗하게 놓여있는 아이들의 묵상 책을 올겨울 함께 펼쳐보며 내가 느낀 이 따뜻함을 아이들과 나눌수 있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안에 충만하게 채워주실거라 믿습니다. 주님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임재를 오늘도 간구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나의 삶을 인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