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12-33,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흉년의 때에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말씀에 순종한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백 배의 수확을 거두게 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하시며 복 주시는 것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들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 버렸다.
왜 그들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빼앗아서 자기들이 사용하지 않고 우물을 막고 메워버려서 아브라함의 흔적을 지웠을까?
아마도 그들은 그들의 선조인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맺은 맹세를 함부로 깰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우물을 메워 버림으로써 그 맹세를 무효화시키는 방법으로 이삭을 쫓아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삭은 그들에게 무력으로나 말로 대항하지 않고 자신이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받은 상속자라는 것을, 그 우물들을 다시 파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부르는 것으로 드러낸다.
19 이삭의 종들이 그랄 평원에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솟아나는 샘줄기를 찾아냈다.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삭이 판 우물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신다.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요5:32)라고 하셨던 것처럼, 원수들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것처럼, 이삭과 함께하심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시며, 아끼고 사랑하는 이삭에게는 그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보는 것 같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12:17-18)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특별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며, 연약한 우리도 주님 닮은 성숙한 사랑을 하도록 가르치신다. 나의 본성을 의지하지 않고 내 안에 솟아나는 샘물이신 성령을 의지하여 그 놀라운 사랑을 나도 본받는 자가 되도록 빚어내시기 위해 몇 번이라도 우물을 다시 파는 수고를 하게 하신다. 어떻게 그 일이 고통스럽지 않을까?
23 이삭은 거기에서 브엘세바로 갔다.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였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과 만나는 묵상의 자리, 예배의 자리가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그 시간 그곳에서, 성령께서, 이해되지 않는 내 삶에 일어나는 일을 말씀으로 비춰주시며 하나님께서 나를 빚어내고 계시다는 것을, 그래서 아픈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주시고, 내 안의 죄 된 본성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알게 하시며,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만 나를 살릴 수 있으셨던 그 지독한 사랑을 도장같이 마음에 품게 하시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주님! 거친 광야 같은 이 땅의 삶에서 주님이 주시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게 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주님께서 뜻하신 대로 나를 빚어내시도록 나를 내어드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제 안에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동일하지만, 그 성취의 방식은
세대마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떠남과 기다림의 방식으로
이삭에게는 머뭃과 양보, 인내의 방식으로
야곱에게는 깨어집과 씨름, 변화의 방식으로
각 사람 안에서 펼쳐지는 전혀 다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됩니다
또한 그 여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각 사람마다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빚어 가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나는 법을 배웠고,
이삭은 다투지 않고 물러나는 온화함과
인내를 배웠고
야곱은 자기 힘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단순히 약속의 외적 성취만이 아니라
그 약속의 통로가 될 사람의 내면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되느 여정으로
이끄시는 모습에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성경 인물 중에 가장 많은 다룸과 훈련을
받은 사람을 뽑으라면 다윗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다윗을 이렇게 빚어가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를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크로노스라는 사람의 시간과
카이로스라는 하나님의 시간에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을 빚어가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언약 안에 포함되는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됩니다
문득 나는 어떤 사람으로 빚어지고 있는가?
자문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지금의 나는 형편 없어 보이고 연약하며
흔들리는 갈대 같을 때가 너무도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고아의 마음을 아는자",
라 이미 칭해 주셨다는 것에
울컥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오늘 이삭이 르호봇에 이르기까지
반복해서 우물을 팠던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그의 성품을 빚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으며
그 여정을 통해 양보, 인내, 하나님을 향한 신뢰,
두려움 없는 순종이 무엇인지 배워가는
시간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 여정을 지나 브엘세바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언약은 더 깊이 그의 삶 안에
자리 잡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늘 성취하는 삶 가운데 살아왔던 저의 옛 자아는
지금도 여전히 성취에 대한 욕구는
불쑥 불쑥 올라와 저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며,
지난 날에 인정, 사랑의 조건으로 작동했던
"성취"라는 행위는 여전히 저를 조급함 속에
몰아 넣곤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실수하고 넘어지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조급함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져 있던 본질,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였음을 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바울의 고백이
요즈음 저의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하지만 이 고백이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시작임을 알기에
소망을 바라봅니다
오직 나를 살리시고 구원하신 예수님만이
저를 향한 계획은 온전하게 이루실 줄 믿습니
오늘도 소망 없는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생명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는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 그의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게 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여,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메워 버리고, 그랄 땅에서 쫓아냅니다.
이삭은 다른 곳에서 우물을 다시 파지만 다툼이 계속 생깁니다. 그 시대에 우물은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싸우지 않고 양보하며 이동했습니다. 그는 우물을 빼앗겨도 하나님이 다시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대로 그가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떠나라고 했던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어와 화친을 맺자고 합니다. 이삭의 삶을 보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본 것입니다. 나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지? 돌아봅니다.
계속해서 우물을 빼앗기는 이삭이 약하고 용기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양보하였지만 결국 다툼이 없는 우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믿음의 용사였고 믿음으로 승리를 얻은 것입니다. 진짜 승리는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 살길 원합니다.
세상 방식으로 싸워서 지키기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살겠습니다.
세상이 나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삭은 농사를 지었고 하나님께서 풍요를 허락하셔서 큰 부자가 되게 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시기하며 그가 파는 우물마다 따라다니며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다.
이삭은 다투지 않고 그때마다 자리를 옮겼다. 손해처럼 보이는 선택이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고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만나 예배하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원수였던 자들과도 화친하게 하시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나는 분쟁이 일어나면 피하는 선택을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 모습이 연약하게 느껴지고 부끄럽게 여겨질 때도 있다. 그러나 오늘 이삭을 통해, 다툼을 피하는 것이 단순한 약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선택일 수 있음을 본다.
무엇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 예배의 자리를 세우는 이삭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주님,
예배가 나를 살립니다.
예배가 나를 바로 세우고, 내 삶의 이유가 되게 하소서.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내삶의 우물이 막혔을때 낙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또 샘이 솟을 거란 확신으로 오늘도 우물을 팝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손가락질하고 무슨 자신감으로 또 막힐 우물을 파고 있냐고 하겠지만
나의 열심은 어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발버둥이 아닌 현실의 낙심되는 상황에서 그저 손놓고 있는 나약함이 아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저 나는 나의 하나님의 권능하심과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 곁에서 살기 원합니다.
이삭은 4번의 새로운 우물(에섹, 싯나, 르호봇, 세바) 아버지 아브라함의 우물을 복원한것까지 하면 총 5번의 우물을 파고 또 팠습니다.
세상이 어리석다 말하던 산위에 거대한 방주를 만들던 노아의 말씀이 오늘 묵상과 함께 떠오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주님이 주신 소망이 가득했기에 절대 꺾일수 없었던 불굴의 의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 낙심되고 좌절할때 내가 얼마나 거대한 손길 속에 있는지 알게 하시고 내뒤의 무한하신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