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읽어 내려가며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들어온 것은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기근과 두려움 앞에서
사라를 누이라고 했고
이삭 역시 그랄 땅에서 리브가를 누이라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제 눈을 열어
보여주신 것은 행동의 반복이라기 보다
그 안에 있는 본질적인 반복이었습니다
그 본질은 바로 "두려움으로 인한 불신"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삭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리라"(창 26:3)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사람을 더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약속보다 상황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거짓말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보다 현실의 위험을 더 신뢰한
마음에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가문 안에
반복되어 온 이 두려움과 불신의 뿌리를
이삭의 시대에서 다시 드러내시면 제거하여 주시길
원하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만들어 내는 "내면의 뿌리와 성향"을
만지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이 깨달아집니다
오늘 이 말씀은 저 자신을 역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겉으로는 상황만 달라졌을 뿐
삶 속에서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는
나의 반응, 패턴, 늘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는 습관과 두려움이 없는지
여전히 제 안에 있는 잘못되고 왜곡되어 있는
내면의 뿌리들이 있는지 기도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실수를 지적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실수를 만들어 내는 본질을 변화 시키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게 됩니다
오늘도 상황이나 현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신뢰하는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창26:1-11, 새번역]
1 일찍이 아브라함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든 적이 있는데, 이삭 때에도 그 땅에 흉년이 들어서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는 자리가 항상 은혜가 풍성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은혜로 감당하던 자리에서 메마름의 시기를 인내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자리가 흔들리지 않는 더 깊은 은혜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과정인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 나를 의탁하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킨다.
4-5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고, 그들에게 이 땅을 다 주겠다.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씨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하겠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나의 말에 순종하고, 나의 명령과 나의 계명과 나의 율례와 나의 법도를 잘 지켰기 때문이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준이 분명히 서 있고, 예수님께서도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히5:8)고 하신 것처럼, 나도 나를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로, 인내가 필요한 그 순종을 배우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7 “그는 나의 누이요.” 이삭은 “그는 나의 아내요” 하고 말하기가 무서웠다.
머무름의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마음마저 담대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생기는 상황으로 인해 감정의 요동침이 있어서 그때마다 나의 연약함을 마주하게 하신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마음을 쏟아놓고 이 잔을 회피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의 은혜로 내 마음에 가득 채워주시기를, 그래서 이런 작은 일도 부대껴하는 내 마음을 넓혀주시기를 기도하게 된다.
주님은 그런 연약한 나에게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묻지 않으시고 그대로 받아주신다. 그리고 조용히, 상처 난 그 손으로 나의 발을 씻어주시며 따뜻한 눈빛으로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말씀하신다. 언제나 연약함밖에 드릴 것이 없는 나는, 주님의 한없는 그 사랑 앞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때가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과 더 친밀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흉년이 들어 이삭이 기근을 피해 블레셋 땅인 그랄에 이르렀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명령하시며,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애굽이 안전하고 풍요로워 보이기 때문에 인간적으로는 당연히 선택해야 하는 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합리보다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말씀이 이때 너는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저에게 묻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대답합니다. 아름다운 리브가로 인해 자신이 죽임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리브가가 그의 아내인 것을 알고, 자기 백성들에게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공표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패를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하는 이 장면이 우리의 실제 모습입니다.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근과 같은 상황이 찾아올 때,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으로부터 책망받는 믿음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저의 부족함보다 크신 주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근 가운데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이삭에게 하나님은 그랄에 머물기를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다시 확증해 주신다. 그러나 이삭은 그 약속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아비멜렉 왕 앞에서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인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통해 그들의 관계를 드러내시고, 오히려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하심으로 이삭을 지키신다.
이처럼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현실의 두려움 앞에서 쉽게 흔들리고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붙드시고 은혜로 인도하신다.
주님, 주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시고,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연약함 속에서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말씀묵상] 창세기26:1~11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로 인하여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함으로 누이라고 했던 것처럼, 아들 이삭도 흉년을 피해 그랄로 이동한 후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하여 자신의 누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이라 일컬어지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고 말씀을 받은 당사자지만 두려움 앞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연약함을 드려다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헌을 통해 당시 고대 근동의 상황을 살펴보면 외지인 남편의 경우 빈번하게 살해를 당하고 아내를 빼앗기는 일이 있었고, 법적인 보호막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브라함과 이삭의 두려움이 막연하고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었다고 판단이 됩니다. 그럼에도 사라와 리브가가 여러 민족과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하면 주님께서 분명 자신들을 지켜주시리라 믿고 담대하게 행동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역시도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만 없는 것은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현실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세상 방법으로 대응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아내를 되찾고 위기를 모면했던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럼에도'의 은혜로 붙드십니다. 나의 능이 아닌 주님의 은혜가 나를 살린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감사함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연약함은 차이가 없습니다. 주님을 더 깊이 신뢰하지 못함으로 벌어지는 온갖 부끄러운 모습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덮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나의 나약함 믿음에 절망함으로 주저앉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이삭은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 속이며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
그러나 거짓으로 덧입힌 가면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는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이삭은 정체를 숨기려 했지만,
정작 이삭이 이삭을 하다가
(껴안다는 이삭의 어원과 같음) 그 진실이 탄로 난다.
거짓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켜보려 했지만,
결국 숨길 수 없는 삶의 본모습이
그의 가면을 벗겨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신앙을 유산처럼 전수해야 한다고 말하며 노력들을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결코 유산처럼 자동으로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서
‘나의 하나님’을 일대일로 대면하는
자신만의 광야를 지나야만 한다.
이삭에게 이 사건은
‘아브라함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이삭’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반전의 성장통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비겁한 거짓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이삭을
즉각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의 진실을 세상 앞에 드러내심으로
그를 더 완벽하게 보호하신다.
이 ‘들통남’은 이삭을 망신 주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얄팍한 꾀가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만을 의지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사랑의 폭로’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 수치스러운 폭로의 자리를
오히려 이삭을 지키는 은혜의 자리로 바꾸어 주신다.
나의 거짓이 드러나는 부끄러운 그 자리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본격적으로 개입하시는
구원의 자리가 됨을 믿는다.
얄팍한 계산으로 나를 숨겨
스스로 지키기 위해 애쓰기보다
정직한 내 본연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나아가 머물기를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