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읽으며
유독 마음 깊이 와 닿은 것은
이삭과 리브가의 삶 속에 있던
“기도의 자리"였습니다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하고
60세에 에서와 야곱을 얻습니다
성경이 이 나이를 굳이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그 이유가 단순한 연대 정보라기 보다
그 사이에 있었던 20년의 기다림과 기도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으며
사람의 눈에는 지연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한 가정과
두 사람의 믿음을 빚어 가고 계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먼저 이삭이 자신의 필요가 아닌 리브가를 위해
기도한 것을 살펴봅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기도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창 25:21)
20년동안 자녀가 없었던 이삭과 리브가
그 기다림 속에서 이삭은 조급함보다 기도를,
원망보다 중보를 선택했음을 보게 됩니다
기도는 단순히 상황을 바꾸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빚어 가는 통로라는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리브가 역시 아이들이 태 안에서 서로 다투자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갑니다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데"(창 25:22)
이삭은 기다림 속에서 기도했고
리브가는 혼란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 기도를 통해
약속의 가정을 빚으시고
구속사의 흐름을 이어가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어제 저녁 중보기도 학교 훈련 시간에
교재에 기록되어 있는 질문이 있었는데
"기도하면서 아직도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나의 생각을 주장하고 있는 영역들은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였습니다
이것을 기록해 보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제가 집에서 예습하면서 무심코 적었던 글을
보는데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건 아닐꺼야, 이것만은 하기 싫어"라고
제 마음가운데 있었던 것에 대해 여전히
붙들고 있는 저의 죄성을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를 하고 집에 오는데 마음이 가벼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찌꺼기처럼 남아있던
저의 아집 조각을 제거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기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저의 방식, 저의 생각,
저의 판단이라는 견고했던 저의 ”틀"을 계속해서
부수며 제거 하고 계셨음이 깊이 깨달아집니다
그렇게 제가 기도 응답을 기다리는 만큼
하나님께서도 가장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
저를 기다려 주셨음을 깨닫게 되는 아침입니다
기도의 응답이란, 결국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의 변화에 있음을 깊이 새기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기도로 저를 변화 시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선하심과 은혜를 구하는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사 30:18 -
[창25:19-34, 새번역]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이삭은 리브가가 20년 동안이나 자녀를 낳지 못하는데도 다른 아내를 얻어 자식을 낳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이삭은 어머니 사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어린 동생을 괴롭히는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등), 자식을 낳지 못해 마음고생한 엄마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아들이었을 것 같다. 이삭은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거처를 옮길 때에도 사라의 장막을 소중히 가지고 다녔다. 아내 리브가로부터 엄마를 잃은 그 깊은 외로움을 위로받았던 이삭은, 아내 리브가에게는 엄마가 받은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니’(21:12), 그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고, 아내를 탓하지 않고, 죽음의 칼날 밑에서 자신을 건져 살리신, 생명의 주인이신, 그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께 오랫동안 간구했을 것이다.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자식이 둘이라면 이 마음을 알까?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완벽한 사랑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도 이 편애가 있으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광야에서 거역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나? 싶은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저주하라고 부른 발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소중히 여기시는 민족이라는 하나님의 편애가 느껴진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민23:9)
야곱이여 네 장막들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민24:5)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녀 삶은 우리를, 나를 이렇게 특별하게 사랑하신다. 그 사랑의 시작은 어머니의 태에서 나를 조성하시기 전부터 하나님의 선택으로 시작된 것이다. 나에게 어떠한 자격이 없음에도 그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을 내가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처절하고 절절한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느껴질 때, 세상에 태어남으로 시작된 상처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에게 귀책이 없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으로 인해 받은 상처들이 치유되고, 또 그 상처들로 생긴 쓴 뿌리가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도록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림을 받는 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이라는 원리를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살이 있게 하시려고, 또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롬9:11-12)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렘1:5)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연약한 사람과 같지 않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시는 분(딤전2:4)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나와 우리를 그들에게 보내시기 위함이다.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여 임신을 하게 됩니다. 태중에서 두 아이가 서로 싸우는지라 리브가는 하나님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오찌할꼬' 묻습니다. 하나님은 “두 민족이 네 태중에 있으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것은 장자가 모든 것을 이어받는 당시 사회적 질서와는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기준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질서가 아닌, 당신의 뜻과 계획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먼저 나온 에서는 붉고 털이 많은 아이였고, 둘째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야곱이 사냥을 하고 돌아온 에서에게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라고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하며 야곱에게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과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사모하는 마음이었지만 인간적인 방법으로 장자권을 탐하는 야곱이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는 에서의 태도는 영적인 의미에서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육적인 욕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육적인 감정과 욕망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놓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순간의 만족보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세상의 작은 '팥죽'에 흔들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제 마음을 붙잡아 주옵소서.
또한 선한 목적이라도 옳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게 하여 주옵소서.
신앙의 여정은 약속과 현실 사이에 벌어진
커다란 간극을 견뎌내는 시간이다.
리브가를 향해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라는 축복의 말씀에도
하나님은 태의 문을 열어주지 않으신다.
답답한 현실,
그러나 그 앞에서 이삭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의 기도는 어쩌다 생각나면 한 번씩 드리는
그런 한탄의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무려 20년 동안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끈질지게 매달린 간절한 기도이다.
결혼 후 첫 아이를 기다리던 시간을 떠올려 보며
이삭과 리브가가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기도했을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이 지체될 때,
쉽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시간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응답하게 하신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이삭과 리브가에게 응답되지 않는 20년의 기다림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복된 가시의 시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을 향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 이미 말씀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에서는 배고픔을 죽음의 공포로 과장하며
장자의 명분이 무익하다하며 먹을 것과 바꾼다.
당장의 결핍과 고통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홀함이고, 영적 무감각함이다.
비록 내 눈 앞의 현실이 견디기 힘든 고통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워서는 안된다.
이는 결국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삶 가운데
하나님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는 기준과
육신의 정욕보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선택하는 용기는
절대 저버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도 에서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며,
나의 선택이 오로지 하나님이기를 바란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했지만 오랫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다렸고, 마침내 하나님의 응답으로 두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도의 응답도 빠르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조금만 지연되어도 마치 응답받지 못한 것처럼 쉽게 낙심하곤 합니다.
주님,
주의 말씀에는 즉시 순종하게 하시고
주의 응답에는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말씀묵상] 창세기 25:19~3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 후 20년만에 임신한 자신의 태 속에서 아들 쌍둥이가 잉태된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아들들이 태 중에서 서로 싸우는 것이 고민이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 어찌해야할지를 여쭙니다. 이 때 주님께서 본문 말씀을 리브가에게 주십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의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상징인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과 장자의 명분을 얻기 위해 형을 속인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결과는 알고 계셨지만 이루어지는 방법과 과정은 온전히 에서와 야곱 스스로의 선택이었습니다. 외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형 에서보다 못하고, 어머니 리브가에 품에 싸여 지내던 마마보이 야곱은 어쩌면 찌질하고 연약한 자의 상징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주님은 이런 교활한 야곱을 성숙의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부르십니다. 인간의 생각과 달리 연약한 자를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그저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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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어 연약한 자를 세우시고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의 생각을 다 알 수 없기에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먼저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부족한 야곱을 통해서 일하셨던 주님께서 오늘 나와 하남153공동체를 통하여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많을 지라도 연단과 성숙을 통하여 주님의 새 일을 행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시고 누리며 살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