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지구촌교회에서
미드웨스턴 한국부 신학대학원생들의
졸업 예배 겸 동문 모임이 진행이 되어
참석했습니다
미국에서 이 행사를 위해 총장님도 오셨고
한국부 학장님도 참석하여 진심으로 이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셨습니다
또한 영상으로만 보았던 이 동원 목사님께서
설교도 해 주셨습니다
백발이 된 이 동원 목사님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졸업하시는 선배님들,
그 졸업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오신 분들,
그리고 이동원 목사님, 재학생 분들의
모습에서 “코이노니아"가 연상되는
축제와 같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래에 그 자리에 있을 저의 모습을
소망하게 되기도 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느껴졌고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의 여정을 아름답게 걷고
계시는 분들과 함께 함에 연합 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유독 아브라함의 마지막이
제 마음 깊이 스며듭니다
"아브라함이 누린 햇수는 모두 백일흔다섯 해이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묵숨대로 다 살고
아주 늙은 나이에 기운이 다하여서,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나 조상들이 간 길로 갔다"
(창 25:7-8)
이 말씀을 읽으면서 단순히 한 사람이 오래 살다가
죽었다는 기록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 안에서 충만히 채워지고
맡겨진 사명을 다한 후
평안히 마침표를 찍는 장면처럼 다가왔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단순히 육신의 노쇠함을 넘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다 살아냈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던 그 순간부터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기다람과 연단,
실패와 회복,
약속과 성취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서
자신의 생을 다 누리고 떠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말씀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잠언 16:31)는
잠언 말씀입니다
백발은 단순히 나이 듦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한 시간의 흔적이며
믿음으로 걸어온 세월의 면류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제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시간을 보내는 삶인가
아니면 하나님 안에서 생을 누리며
사명을 이루어가는 삶인가
저 역시 언젠가 아브라함처럼
"기한이 차서" 평안히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이 듭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루를 누리고
맡겨진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며
믿음의 백발을 면류관처럼 써 가는
인생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창25:1-18, 새번역]
17:4 나는 너와 언약을 세우고 약속한다. 너는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육신의 혈통으로도 이 땅에서 그의 자손들을 통해 실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다른 아내인 그두라를 통해 태어난 자손들은 동방 민족들의 조상이 되고 하갈을 통해 태어난 이스마엘은 열두 아들을 낳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첩들에게서 얻은 아들들에게 한몫씩 나누어 주고는 동방으로 보내버린다. 자기 아들 이삭과 떨어져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아브라함의 대부분의 소유가 약속의 자녀인 이삭에게로 상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11 아브라함이 죽은 뒤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 그 때에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24장에서도 언급되었던 브엘라해로이가 또 이삭의 거처로 등장한다. 이 브엘라해로이는 하갈이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하였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난 사막에 샘이 있는 장소이다.
16:13-14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이삭은 어머니 사라가 죽은 후와 아버지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이곳에 와서 하나님의 위로를 얻은 것 같다. 이삭이 마음이 외롭고 힘들 때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브엘라해로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다. 눈을 뜨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와 시간이 있다. 내가 마음이 외롭고 힘들 때, 속상한 일로 아무도 모르게 울다가 잠이 들 때도, ‘주님은 지금, 내가 눈이 퉁퉁 불 정도로 소리 죽여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계시겠지...’, ‘지금은 울고 있지만, 잠시 후에 그 시간 그곳에 가면 주님께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실 거야...’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고 정말 그 시간 그 장소에 가면 주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연약한 나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는, 내게는 정말로 소중한 시간과 장소이다.
아브라함이 다른 자녀들을 약속의 자녀인 이삭과 따로 떨어져서 살게 한 것처럼, 나도 내 자녀를 세상의 가치관에 휩쓸려 그 세속적인 문화에 섞여 살지 않도록 보호하고 싶다. 내게 맡겨주신 자녀들도 그렇게 보호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매일 말씀을 먹이려고 마음을 쓴다. 억지로 먹일 수는 없기에 오늘도 주님께, 나의 자녀들에게 말씀을 먹여 주시기를 의탁하며 기도드린다.
아브라함은 1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75세에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이후, 그는 타향에서 100년의 시간을 살아냈다.
그 긴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은 이삭에게로 이어졌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하나님은 이삭에게 복을 주시며 그 약속을 계속 이루어 가신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한 사람이 한결같이 한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하게 된다.
연약한 나는 쉽게 흔들리고, 의심하고, 때로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조차 잊어버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수많은 시간과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않았다.
그의 인생의 끝에서까지 그 믿음은 이어졌고, 결국 하나님은 그 약속을 이루셨다.
주님,
봄이 되어 들꽃이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 작은 들꽃조차 때마다 필요를 따라 먹이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것처럼,
저의 삶 또한 주님이 붙드시고 이루어 가심을 믿습니다.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주님이 주신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믿음을 허락하시고
이 땅이 아닌 본향을 향한 소망을 놓지 않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의 죽음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하게 된다.
먼저,
세상에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상속으로 인한
다툼과 갈등이 뒤따르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죽음은 그와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다”라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이어가시기 위하여 이삭에게 복을 주신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끝까지 믿음으로 붙든다.
그는 후처를 두며 여러 자녀를 낳았지만,
그의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어 동방으로 떠나보낸다.
아브라함은 기업이 이삭에게만 있음을
죽음의 순간까지 잊지 않고,
언약을 성실히 지키기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음에 깊이 남는 것은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한 평가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늙어서 기운이 다해 죽었다”고 기록한다.
“늙어서”로 번역한 사베아(שָׂבֵעַ)는
만족하다, 배부르다, 가득차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부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의 삶을 돌아보면
사실 사베아라는 만족의 삶이라기보다
야곱의 고백처럼 험악한 세월이었다.
기근과 전쟁,
조카와의 이별과 아내를 빼앗길 뻔한 위기,
어렵게 얻은 이삭을 바쳐야 했던 시험까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삶을
사베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찬 만족한 삶이라고 말씀하신다.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삶이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굴곡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간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은혜로 덮어주셨기 때문이다.
고난이 없어서 만족이 아니라,
그 모든 순간마다 아브라함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며
하나님으로 인한 은혜가 채워지는 삶
그래서 아브라함의 삶이 만족한 삶이 된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내가 겪은 고난과 고통의 크기를 탓하는 험악함이 아니라,
그 가운데 동행하시며 은혜로 덮어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사베아의 삶이었다고 남기를 소망한다.
비록 험악한 오늘일지라도
만족함으로 바꾸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하루이기를 기도한다.
[말씀묵상] 창세기 25:1~18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시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본토, 친척, 아비 집(갈대아 우르)을 떠나 나그네로 100년을 지내며 살았던 아브라함도 때가 되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랐던 '순종의 여정'과 '하나님과 맺은 특별한 언약'으로 인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마침내 세상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와 순종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뜻에 따른 민감한 순종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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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오직 주님의 말씀만을 붙들고 한 평생을 살았던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바라보며 나 역시도 그리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주님의 일을 행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되도록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연약한 믿음을 도우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