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읽으며
단순히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을 기록한
결혼 이야기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사람들을 통해 막힘없이
이루어지는 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스토리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때
이미 이삭을 위해 리브가의 탄생을 준비하셨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준비하셨던 리브가와 이삭의 만남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즉,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은 단순한 우연이나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의 순종,
리브가의 가족의 동의,
리브가의 결단,
그리고 이삭의 기다림까지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그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심을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특별히 오늘 제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된 것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라는
고백입니다
리브가의 가족은 상황을 보며
이 일이 사람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일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또한 그 일을 행하시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과 환경을 하나씩 맞추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만의 순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마음과 걸음을 통해
결국 선한 열매를 이루어 가심을 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브라함의 종은 사명을 감당하고
리브가의 부모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며,
리브가는 믿음으로 반응하고
이삭은 들에서 묵상하며 기다립니다
각자의 자리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서 모두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음를 깨닫게 됩니다
특히 리브가의 "예, 가겠습니다"
(I will go)라는 망설임 없는 즉각적인
순종의 대답이 저에게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리브가처럼 어떤 생각과 머뭇거림이 없이
바로 대답하며 따라갈 수 있을까
자문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저의 감정이나 생각, 두려움, 망설임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담대하게 반응하는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만남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오늘도 하루를 시작합니다
[창24:50-67, 새번역]
56 “저를 더 붙잡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저의 여행을 형통하게 하셨으니, 제가 여기에서 떠나서, 저의 주인에게로 갈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는다. 미루고 지체하는 일은 단지 주인의 일이 며칠 늦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이제부터 삶이 예배가 되도록 매일 말씀과 기도로 살아 보겠다고 결심하지만, 막상 일상이 시작되면 매일 반복되는 급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우선순위가 밀리게 된다. 또 저녁에는 피곤해져서 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며 그 결심이 사그라져 버린다. 이런 실패의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말씀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영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거짓의 아비 사탄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략인 것 같다.
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는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어머니가 계신 집을 떠나, 멀리 낯선 곳으로, 낯선 사람을 따라나서는 것은 그렇게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닐 텐데, 리브가도 역시 지체하지 않고 대답한다. 리브가는 지금까지 익숙하게 누렸던 어머니가 있는 편안한 안식처를 떠나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이제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시려는 일에 순종하는 삶을 시작한다.
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 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입을 통해,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아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통해 원수 마귀의 권세 아래서 종노릇하고 있는 자들을 죄로부터 구속하셔서 우리 주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실 것을 예언하게 하신다.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종이 아브라함이 있는 헤브론으로 가지 않고 이삭이 거처를 옮겨 살고 있는 네겝 지역으로 온 것으로 볼 때, 이삭이 묵상을 하며, 하나님께서 택하여 그에게로 보내실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삭은 어머니 사라의 장막에 자신의 신부인 리브가를 데리고 들어간다.
65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아8:5-6 그의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너로 말미암아 네 어머니가 고생한 곳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에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우리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나의 신랑 되신 예수께서는, 이 거친 세상에서 주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사는 자들을, 죽음을 이기신 그분의 사랑으로 끝까지 지키실 것이다.
라반과 브두엘은 아브라함의 종으로부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이 모든 일이 여호와의 뜻대로 된 것임을 깨닫고 리브가를 보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이 리브가에게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물으니, 리브가가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삭은 들에서 묵상하다가 리브가를 맞이합니다.
오늘 본문은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라반과 브두엘 그리고 리브가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기에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순종의 결과로 리브가는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 민족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이삭은 바쁜 일과가 끝난 후 방해받지 않는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묵상이라는 지팡이는 우리를 주님이 예비하신 안전하고 완전한 길로 인도해 줍니다.
"이삭이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어머니를 잃고 슬픔 가운데 있던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리브가를 통해 위로를 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크고 복된 일로 해결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내 뜻과 내 생각으로 인하여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일'을 놓치지 않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들에 나가 묵상하던 이삭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 조용히 묵상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묵상을 통하여 주님의 때와 주님의 일하심을 분별하게 하시고, 준비된 마음으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맞이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브라함의 종을 통해 리브가는 이삭과의 결혼을 결단하게 된다.
이 결단은 단순한 인간적인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대한 믿음의 응답이었다.
리브가는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이삭을 만나 부부가 된다.
그녀의 모습에는 주님의 뜻을 분별한 후, 거침없이 순종하는 확고한 믿음이 드러난다.
어제 다락방에서 ‘양의 문’에 대해 나누며, 우리는 주님의 양이고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심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목자가 부르고 계실 때, 나는 즉각 반응하며 따라가고 있는가?
실로암 못에 가서 바로 순종했던 맹인처럼,
또 아브라함의 종의 말을 듣고 즉시 순종했던 리브가처럼,
나 역시 주님의 음성 앞에 지체하지 않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
주님,
목자의 음성을 올바르게 분별하게 하시고,
그 음성을 들을 때 망설이지 않고 따라가는
신실한 양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묵상] 창세기24:50~67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와 즉시 떠나려고 하자 리브가의 어머니와 오라버니는 몇일 만이라도 같이 지내면서 이별의 정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종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여정을 인도하심을 강조하며 리브가와 함께 주인에게로 돌아가기를 간청합니다. 이에 가족들은 당사자인 리브가에게 의견을 물었고 리브가는 종과 함께 '가겠나이다'로 대답하며 따라 나섭니다. 성경에서는 이 장면을 너무나 담백하게 쓰고 있지만 당시 이삭이 살던 네게브 지역은 가나안 남쪽이었고, 리브가가 자란 곳은 메소포타미아 북부 밧단아람으로 떨어진 거리가 800~900km정도로 추정됩니다. 이 거리는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와 비슷합니다. 낙타가 하루 평균 20~30km를 이동하는 것을 감안하면 대략 한달에서 한달반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먼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리브가는 주저하지 않고 '가겠나이다'하고 순종으로 따라 나섭니다. 마치 이 장면은 하나님의 명령에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의 모습과 겹칩니다. 이런 리브가의 주저없는 결단과 순종은 시어머니 사라에게 약속된 '열국의 어미'가 되는 축복이 며느리 리브가에게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신뢰함으로 그 분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큰 역사를 만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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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하나님, 며칠만 더 머물다가 떠나라는 어머니의 말에 리브가는 주저없이 종을 따라나섭니다. 갈 길이 멀고, 험해서 다시는 부모와 가족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기약없는 상황임에도 무엇이 이 소녀에게 이런 담대한 순종으로 이끌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비록 연약한 자였지만 순종을 통해서 열국의 어미의 계보를 잇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바라보며, 주님을 향한 가장 높은 신뢰의 표현인 순종이 나의 삶에도 일어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종의 간증을 들은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고백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명확히 드러난 순간,
인간의 계산이나 감정은
더 이상 기준이 되지 못하기에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해 보겠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는 말로
순종를 미루거나 포장된 불순종을 선택하곤 한다.
내 생각에 좋은지 나쁜지를 따지는 '가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된 이후 방점은
리브가의 결단에 의해 찍힌다.
가족들은 아쉬움의 정을 앞세워 열흘 더 머물기를 청하지만,
리브가의 결단은 단호하다.
“가겠나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
얼굴도 모르고 아는 것 하나도 없지만,
지체하지 않고 떠나겠다 결정한다.
아는 것 하나 없는 막막함 가운데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리브가의 믿음의 결단이다.
하나님의 뜻이 확증된 때, 즉시 발걸음을 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 긴 여정은 끝은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여
사랑하며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다고 말한다.
아브라함의 처절한 순종과 종의 기도,
리브가의 즉각적인 결단은
결국 이삭의 상실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위로에 다다른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을 결코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신다.
나의 유불리를 판단하는 가부를 내려놓고 순종을 선택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생각을 뛰어넘는
사랑과 위로의 장막으로 인도하심을 확신해야 한다.
창세기속의 어떤 인생은 낳고 낳고로 축약하기도 하는데 오늘 본문 24장은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을 길고도 길게 담아 놓았다.
하나님이 이어주시는 베필에 관한 이야기이다.
리브가는 이삭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의 종을 따라 그녀의 집을 떠나 이삭에게로 온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날이 저물어 갈 즈음 들판에서 묵상하고 있는 이삭을 보게된다.
[창24:63-67]
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성경이 처음으로 로맨틱 영화처럼 느껴져서 필사하다 눈을감고 그 장면을 상상해봤다.
모든것을 순응하고 기꺼이 물을 떠 종과 낙타에게 대접하던 리브가의 그 순종의 행동은 조건과 목적이 없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삶의 자리에서 선택한 여러 만남과 일 직장 심지어 내가 선택한것이 아닌 자녀의 자리 혹은 부모의 자리까지
그 모든 인연이 주님이 택하신 자리였다면... 나이기 때문에 보내신것이라면... 문득 나의 순종이 단지 주님을 위한 일뿐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는 아침이다.
다음날을 기대하며 살던 나였는데 어느날 부터는 아침이 두려워 잠자기가 싫어지는 날들이 늘어났다.
물을 뜨는 것이 두려워서 일까? 내가 택한 자리가 아님에서 오는 원망인것일까?
주님이 보내신 자리라면 나의 이 멍에가 주님께서 쥐어주신 사명이라면...
정말 가끔씩 내 마음이 모든것을 주께 맡기는 마음으로 모든것에서 힘을 빼는 순간에 마치 꽁꽁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이
꼬여있던 상황이 관계가 일들이 풀리는 일들을 경험한다.
이번 한주 기대를 넘어 서는 두려움으로 마주하게 될 많은 상황들을 나의 힘이 아닌 온전히 주께 맡기는 마음에서 출발하기를 기도한다.
주님 나의 멍에의 이유는 주께서만 아시오니 리브가처럼 기쁘게 물을 떠 나의 주인께 내어 드리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님을 신뢰합니다. 실체가 있고 결과를 책임지시는 나의 하나님 내가 믿는 하나님의 모든 권능과 영광 아래의 나의 삶을 주관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