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3:1-20, 새번역]
아브람이 롯과 헤어진 뒤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눈을 크게 뜨고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시며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다시 약속하셨다. 그 약속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떠돌아다니던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정착하여 살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을 시작했다.
4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나그네로, 떠돌이로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의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정도로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살았던 것 같다. 롯을 구하러 갈 때의 기록을 보면, 아브람은 그 땅 사람이면서 형제간인 마므레, 에스골, 아넬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고 집에서 낳아 훈련시킨 사병이 318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들 중에 함께 살며 그들을 적들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축복의 통로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헷 사람들의 말처럼 따로 값을 치르지 않아도 그 땅에 아내 사라를 매장해도 될 정도의 권한을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는 자로 살아간다.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히11:9-10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갔을 때도 지금은 예루살렘의 성전은 파괴되고 없지만 성전을 마주 보는 위치에 유대인들의 무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타국에 살던 유대인들도 부활을 소망하며 자신의 매장지를 그곳에 마련하는 것을 소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애굽에서 죽은 야곱과 요셉도 가나안 땅에 묻힌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주기로 약속하셨지만, 정작 아브라함은 재산이 많았음에도 자신이 머무르던 그 땅을 사서 직접 소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부활을 소망하며 아내 사라와 자신이 묻힐 매장지만을, 사람들이 다 보는 가운데, 에브론이 부르는 대로 값을 지불하고 사서, 부활의 때까지 거기에 묻힐 유골들을 절대로 옮기거나 훼손할 수 없게 확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22:32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불리시는 것을 즐겨하시며 기뻐하신다.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는 자(창21:33)가 되었던 것처럼, 나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지 않는 자로, 그분과의 풍성한 교제를 누리는 가운데,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는 나그네로 살기 원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요11:25-26)
사라가 백이십칠 세에 죽어 아브라함이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죽은 아내를 장사 지낼 매장지를 헷 사람에게 요청합니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며 호의를 베풉니다.
아브라함이 소할의 아들 애브론이 소유한 막벨라 굴을 소유지가 되게 해 달라고 하자, 그들은 거저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그 땅을 자기 소유지로 확정합니다.
아브라함은 무상으로 주겠다는 땅을 왜 굳이 대가를 지불하고 샀을까? 묵상해 봅니다. 이 일은 소유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지혜로운 거래 행위로 보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한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땅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모두가 묻히는 믿음의 자리가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 속에서 확정 짓기 위해, 사람의 호의가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 것입니다. 믿음의 성취는 나의 정당한 대가 지불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이 작은 선택 하나에서도 주의 약속을 신뢰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의 태도인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말씀 앞에서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공짜로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무엇을 투자하고 있나? 돌아봅니다.
아브라함처럼 삶의 선택과 행동에서 믿음이 드러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나에게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바른길을 택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그 나라를 위해 기꺼이 투자하며 살겠습니다.
저의 삶이 믿음의 흔적이 되게 하시고,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브라함은 죽은 사라의 장사를 준비하며, 제값을 주고 아내를 묻을 땅을 구입한다. 사람들은 그냥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그것을 받지 않고 정당한 값을 지불한다. 그 모습을 보며,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에게 타작마당과 소와 나무를 값을 주고 구입했던 다윗이 떠오른다(사무엘하 24장).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있어 ‘거저’ 드리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떤 것이든 가볍게 여길 수 없으며, 정성과 대가가 담긴 드림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해 드리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가나안땅에 있는 막벨라 굴을 소유한다.
고향 땅에 묻기를 소원하는 그들의 장례모습과 달리 가나안에 아내를 묻고 아브라함도 그곳에 자신의 마지막 뿌리를 내림을 다짐한다.
창세기를 보다보면 가나안은 부정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설명되는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보내셨을까 더 의아 한것은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묘사이다.
가나안은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땅이었다. 그런 곳이 비옥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으로 가게 하심은 비옥한 땅에서 잘먹고 잘살기만을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이라기 보다는
그 부정한 땅에 아브라함의 순종의 밀알이 심어지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은혜가 느껴지는 아침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그곳에 장사함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그곳을 보낸 약속의 씨앗을 뿌리내릴 결심을 한다.
결실을 맺기 위한 정당함의 시작으로 막벨라 굴을 돈을 지불하여 소유한다.
이로써 그 땅의 영원한 소유를 보장받는다.
주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반응하길 거기서 더 나아가 그 믿음의 반응이 뿌리내릴수 있도록 밀알을 심는 마음으로
기꺼이 주님과 동행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나의 소유를 내어 드림에 주저함이 없기를 주님 나의 삶을 주장하시고
보호 하시고 모든 것에 실체를 보이시는 주님을 더욱더 신뢰하게 하소서
[신1: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말씀묵상] 창세기23:1~20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아브라함은 구십 세의 많은 나이에 이삭을 낳은 아내 사라가 죽자 매장을 위한 장소로 고향 갈대아 우르가 아닌 가나안의 막벨라 밭과 굴을 삽니다. 헷 족속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아브라함이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실제로 뿌리를 내리게 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것과 가나안 땅을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할 것이라는 언약을 충실하게 지켜 나가십니다. 이처럼 언약을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 죄를 사하시고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언약이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으며 넘어지지 않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나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언약을 성취하시는 신실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나의 시선을 주님께로 향하고자 애쓰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
신실하신 하나님, 자녀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이루시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불가운데로 지나시며 언약을 확증하신 주님께서 이제까지 이루신 것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루어 가심을 기대합니다. 비록 연약하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주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사역에 작은 부분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길 원하며, 한 주간도 은혜로 동행하신 주님께 영광 올려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깊은 슬픔에 잠겨 애통해한다.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상실의 시간은 찾아오지만,
아브라함은 그 슬픔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고
일어나 나갔다.
영적 가장이자 믿음의 부모 세대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는,
죽음과 슬픔의 현장인 시신 앞에서조차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슬픔은 결코 끝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헷 족속은 그를 향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 부르며,
자신들의 땅 어디든 장사하기를 금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한국 교회가 한때 교회를 다닌다 라는 것만으로도
신용을 얻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밝히기를 꺼려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현실이
아브라함의 모습과 대조되어 큰 도전을 준다.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이방인들이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음 세대와 세상 앞에 보여주어야 할
영적 권위가 무엇인지 말해 준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거저 가지라"는
에브론의 호의에도 불구하고,
굳이 정당한 값을 지불하여 땅을 산다.
공짜, 좋다.
하지만 당장 얻는 '공짜'는 달콤할지 모르나,
훗날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인이 통용하는 은 400세겔을 정확히 달아 줌으로써,
정직한 대가를 치르고 막벨라 굴을
자신의 소유로 확정한다.
이 땅은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첫 출발점이 되었다.
믿음은 그저 자리에 앉아 말로만 하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서,
정당하게 수고하고 정직하게 책임지는 모습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
상실의 슬픔조차 사명의 기회로 바꿔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자답게
당당히 살아가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거나 요행을 바라지 않고,
영적 가장으로서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정직한 삶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확증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슬픔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나
세상을 향해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