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너무나 잘 알려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모리아 땅의 산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백세에 얻은 기적 같은 아들이자
하나님께서 약속의 선물로 주신
그 아들을 말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순종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라는
말씀은 그의 즉각적인 순종을 나타내 줍니다
마침내 아이를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창 22:12)
그 순간 아브라함의 눈에는
한 마리 숫양이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이레"라고 부릅니다
이 스토리는 너무나 익숙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 시선을 멈추게 한
한 줄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여호와 이레 뿐 아니라
그 다음 이삭의 믿음의 여정을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여호와 이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 후에”로 시작되는 것으로
이 이야기와 상관 없어 보이는 몇절의 말씀이
등장함을 보게 됩니다
지나치듯 읽었던 이 말씀에서
저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준비하심에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 창 22: 23 -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수십번을 성경을 읽었는데
오늘에서야 이 말씀이 제 눈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리브가를 낳았고"가 진한 볼드체로 보여집니다
리브가는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될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족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이삭의 다음 여정까지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실 그때에
이미 이삭의 미래와 약속의 계보를 이어갈
배우자를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이
저에겐 오늘 너무 감격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은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 그보다 훨씬 멀리
보고 계신 분이며 그 문제를 통과할 방법 뿐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기고 또 새기게 되는 아침입니다
까마득하게 생각되는 지금의 현실 가운데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다음"이 있다는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여호와 이레는
숫양 뒤에 리브가로
오늘의 순종 뒤에 내일의 은혜가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립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여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을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선물처럼 주신 오늘의 양식을 먹으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딤전 4:4-5 -
하나님께서 제 삶에 허락하신 모든 순간을
감사하게 사는 매일 매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창22:1-24, 새번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훗날 그의 자손들에게 주실 ‘약속의 땅’의 경계가 될 브엘세바에서, 그랄(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평화조약을 맺고, 자신이 판 우물이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증거물을 세워 확정했다. 그리고 그 땅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에서 ‘영생하시는 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다.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어제 전도서를 통해 배웠던 말씀처럼 ‘시험해 보시려고’를 ‘드러내 보이시려고’로 해석하니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온전히 아신다. 그를 시험에 들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 고난으로 그를 연단하셔서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될 자격을 갖추게 하셨다.
1 “아브라함아!”
2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마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신 것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아브라함아!, 내가 네게 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는 것 같다.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고 믿음으로 반응한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히11:13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멀리서 바라본 그곳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세워진 곳(대하3:1)이며, 그 성문(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5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히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하나님께서는 브엘세바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고백한 아브라함의 믿음, 시간과 죽음을 초월하여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을 드러내신 것이다.
이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그의 전 인생을 통해 빚어내신 믿음인 것이다.
죽음이 무서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면서도 속이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했던 아브라함,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방 왕 앞에서 계속해서 그의 편을 들어주시며, 내가 그와 함께한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그와 끝까지 함께하시며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내셨다.
그런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롬4:17)으로 믿었다.
20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아브라함은 밀가가 자식들을 낳았다는 말을 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방 땅 하란에서 아브라함 형제들의 혈통으로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준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부활, 승천, 성령 강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준비하심과 같이.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다. 내가 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낼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라고 명하시고,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이삭이 아버지를 따라가면서 묻습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라함의 믿음도 대단하지만 '번제할 어린 양'이 되어 제단에 누운 이삭의 순종도 놀랍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한 순종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준비해 두신 수풀에 걸린 숫양으로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과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과 모든 민족이 그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축복을 다시 받게 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삶의 의미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이삭'이 있습니다. 그것이 자녀, 물질, 성공, 관계, 또는 내가 통제하고 싶은 미래일 수 있습니다.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것, 이걸 잃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은 그것이 곧 우리의 '이삭'입니다.
그것들이 소중하지만 하나님보다 앞서면 우상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죽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의 필요를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파괴가 아니라 믿음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붙잡고 있는 '이삭'을 내려놓을 때에,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까지도 주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큰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다락방에서 나누었던 맹인의 순종이 오늘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다시 떠오릅니다.
보지 못하지만 말씀에 따라 “가서 씻은” 맹인처럼, 아브라함 역시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명령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유를 묻지 않고 묵묵히 산으로 올라갑니다.
이삭이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묻는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갑니다.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십니다.
성경 속 순종의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보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한다는 것입니다.
이해보다 순종을, 계산보다 믿음을 선택합니다.
저 역시 삶의 여러 상황을 이유로 순종을 미루거나 변명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결단합니다.
주님,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길 원합니다.
내 상황을 앞세우지 않고, 무조건적인 순종과 즉각적인 순종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말씀묵상] 창세기 22:1~24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백 살의 나이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주저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릅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의 자손을 통한 복을 언약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담대하고 거침없는 믿음을 실천한 아브라함은 지금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일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막힘없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 분을 향한 신뢰가 선행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여전히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나의 소유를 기꺼이 주님께 드리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지 않고 나를 먼저 바라보는 교만한 시선을 회개하며 그럼에도 나의 연약한 믿음을 단단히 세워가실 주님을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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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백 세에 낳은 아들을 기꺼이 번제로 드리려 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이런 믿음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지만 잘 헤아려지지 않고, 이런 믿음을 사모하지만 턱없이 부족할 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 막힘 담은 없는지 살펴보게 하시고, 철저하게 그 담을 허물어서 주님과의 깊은 사귐이 있게 하옵소서. 이를 통해 세월이 지나며 주님을 향한 한층 깊어진 믿음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길 원합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았고 모든 민족들의 왕이 되게 하리라는 언약을 선물하셨다.
그런데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것 같다.
그런데 오늘의 창세기 말씀에서 12절의 한단어에 시선이 꽂힌다.
"이제야"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이전이 아닌 이제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 하는 사람인것을 아신다고 하신다.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택할때가 아닌 이제야...
주님이 우리를 택함은 조건부가 아니다. 삶속에서 여러 고난과 갈림길을 마주할때 그것은 나를 시험하기 위함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만한다.
주님이 이미 나를 택하신 순간 우리는 이미 축복을 받은 존재이며 그것이 특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택함은 그가 이미 순종할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주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단련하신다.
아브라함은 주님이 그에게 자녀를 주신다 약속하실때 엎드려 웃었던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 연약함을 끝까지 시험하시고 이삭을 데리고 산으로 향하던 아브라함의 속마음은 주님의 언약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몸부림이었을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상황에 낙심하지도 그렇다고 축복받았다 자랑하지도 않는 고요한 인생이 되길 기도한다.
주님 그저 오늘 지금 이순간을 살아낼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지금 이 상황을 바라 볼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주님이 나를 단련하시기 전에 나를 택하시길 기도하는 제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은 시험하시되, 시험을 이길 숫양을 직접 준비하시는 분이다.
100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은
이성으로나 인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구다.
그러나 11장에서 21장까지, 아브라함의 비겁함과 조급함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그의 삶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의 대반전은 이해가 된다.
22장의 순종은 아브라함이 짜낸 초인적인 힘이 아니라,
수십 년간 켜켜이 쌓인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11장과 21장 사이를 살면서,
22장의 믿음을 '나와는 상관없는 목표'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부러워하면서도 정작 "나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각자의 '모리아'로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중독되어 살지 말고,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신다.
그곳은 내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예비하심, 여호와 이레를 경험하는 자리다.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물으신다.
나의 손에 꽉 쥐고 있는 이삭을 하나님께 위탁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