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읽으며
"나는 고기를 잡으로 가겠소"라고 말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조금은 의아하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기쁨이고 소망이라기 보다
주님을 세 번 부인했던 실패와 죄책감,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를
막막함 속에서 가장 익숙했던 삶의 자리,
어부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 같습니다
상처를 입거나 실패를 경험하면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길보다
익숙했던 옛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또는 옛 시절이 그리워 한 없이 그 기억 속에
머물러 웅크리고 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즉, 낙심하고 실패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찾기 보다
다시 내 방식, 내가 잘하던 것으로
돌아가려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가장 익숙한 자리, 가장 오랜 시간 했던
능숙한 솜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님 없는 수고는 빈 그물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 역시 하나님을 만났지만
제가 가장 빛났다고 생각했고 가장 인정받았다
생각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 회복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오늘 베드로의 모습처럼
번번히 결과는 빈 그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빈 그물 앞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을 건네시며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니
물고기가 153마리가 잡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삶에 맺혀지는 다양하고 풍성한 열매는
사람이 스스로 맺을 수 없음을
다시금 깊이 새기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볼드체"로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 세 번째로 나타나신 것이라"(요 21:14)
왜 굳이 세번째라 기록했을까 ? 하는 생각에 이어
바로 베드로가 세번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이
오버랩됩니다 마치 베드로의 세번이라는
실패 앞에 회복을 주시려고 하시는
복선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이 숫자 3은 저에게는 단순한 횟수가 아니라
완전한 회복을 향한 주님의 확증처럼 느껴졌습니다
여전히 불완전하게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으로 인해
완전한 회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늘 넘어지고 낙심하고 실패하는 나약한 저이지만
완전한 회복을 위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신뢰하며 기다립니다
그렇게 주님을 붙잡고
이 땅에서의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21:1-14, 새번역]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제자들과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던 길에,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마26:31-32) 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33절) 라고 고백을 한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무덤 안에 있던 천사들은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기를 그는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그가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거기에서 그를 볼 것이라고 하시오.”(막16:7)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기까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고 갈릴리로 갈 생각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주 그들에게 나타나시지 않았다. 두 번 나타나셔서 도마까지 믿게 하시고는 더 이상 그들 가운데 나타나시지 않았다. 그러자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을 다시 뵙고 함께 있기를 갈망하다가 그 말씀이 생각났을 것 같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언제 나타나실지 모르는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3 그러나 그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4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들이 밤새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고 있었지만, 그들 마음은 물고기가 얼마만큼이나 잡힐까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구나...’ 하는 실망감으로 깊어가는 밤이었을 것 같다. 예수께서는 밤에도 물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오셨던 분이시기에...
예수께서는 동틀 무렵에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배가 있는 곳으로 직접 걸어오시지도 않고, 또 이전처럼 시몬의 배에 오르지도 않으신 채로 말씀만으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게 하셨다.
바닷가에 서신 분이 예수신 줄 알게 된 베드로는, 이번에는 베드로가 예수를 향해 바다로 뛰어든다. 벗은 몸으로 예수님 앞에 갈 수 없어서, 물에 젖을 것 같아 벗어 놓았던 겉옷을 몸에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린다.
9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베드로는 몸이 젖어 추웠겠지만, 숯불에 가까이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떨군 채로 있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하시자, 시몬 베드로가 가장 먼저 반응한다. 그는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 내리고 그물 안에 잡힌 큰 고기를 한 마리씩 세고 있다.
(눅5:6)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11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요16:7)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마28:20)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그분의 부활하신 몸을 붙들고 있으려는 제자들에게, 마치 엄마가 신생아에서 조금 자란 아기에게 까꿍 놀이를 하면서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너를 지키고 보호하고 있어!’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으로 함께 계시며 그들로 찢어지지 않는 그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실 것을 알려주시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예수를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다시 어부로 돌아간 그들의 모습과 예수를 쫓았으나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상처를 숯불로 떠올리게 하신 것 같다.
13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제자들의 손을 통해 나눠주게 하셔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것처럼, 다시 그들 가까이에 오셔서 빵과 물고기를 그들 손에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로 먹게 하셨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 받아먹은 그것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얼마든지 나눠주게 될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마5:25)
주님! 내 손에 주셔서 먹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이제 당신께 받아먹은 그 말씀으로 영혼을 살리는 일이 내게도 계속되게 하옵소서!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제자들은 평생 고기 잡는 어부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애를 써 보았지만 결국 빈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서셨으나 알지 못하더라”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상황은 그대로인데 말씀에 순종하니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제자들이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숯불을 피우고 생선과 떡을 준비하고 환대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나에게 적용해 봅니다. 나 또한 제자들처럼 틈만 나면 과거의 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둔감하니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의 모습이 제자들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내 곁에 계시고 내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언제나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한 것이 없으나 주님이 주권적으로 나를 이끄심을 인정합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주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이미 준비해 두신 은혜를 신뢰하며, 순종으로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경험 많은 어부인 제자들이 밤새도록 애썼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의 수고를 아시고, 이미 숯불과 떡과 생선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지치고 허기진 제자들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채워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때 제자들에게 그러하셨듯,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때마다 영과 육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돌보십니다. 그 사랑이 오늘 나를 향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주님,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내 삶의 어느 순간도 놓치지 않으시고 살피며 돌보시는 분임을 기억합니다. 그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말씀묵상] 요한복음21:1~14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비록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연약한 베드로였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펴느라 힘들었음에도 '주님이시다'라는 요한의 말에 차가운 바다로 거침없이 뛰어듭니다. 베드로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향한 미안함과 민망함이 교차했을 것임에도 주님을 보고 싶다는 그리운 마음과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드러난 행동으로 읽힘니다. 마음 가는대로 남의 눈치 살피지 않고 직진하는 모습이 영낙없는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어쩌면 베드로의 물불가리지 않는 이런 순수한 마음을 사랑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섬기면서 베드로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한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나의 형편과 사정을 다 돌아보고, 자로 재고 내 형편을 합리화하면서 남은 작은 마음만 주님께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앞뒤 재지 않고 주님께 빨리 가고자 바다로 뛰어내렸던 베드로의 주님을 향한 그 마음을 진정 닮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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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예수님, 여전히 온전치 못한 나의 행동이 올무가 되어 주님께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어리석은 자녀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실패했지만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베드로처럼 나 역시도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아이처럼 주님 앞에 달려나가 베드로가 누렸던 주님과의 이어짐과 기쁨을 나 역시도 누리길 원합니다. 오늘도 연약한 믿음을 도우사 온전히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한 날이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