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라"
이장면을 연상하다가 문득 창세기의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처음 아담은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는 장면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선언하시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첫 창조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육적인 생명을 주셨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에게
영적인 생명, 곧 성령님의 평화가 있는 생명을
불어 넣어주셨음이 깨달아집니다
문을 굳게 닫고 있던 제자들은
살아는 있지만
실상은 두려움과 낙심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숨결이 임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 살아나는 존재가 됩니다
죽음을 이기신 주님의 생명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신앙생활이 단순히 종교적 습관으로
머무는 삶이 아닌 매일 매일 주님의 숨결로
다시 살아나는 생명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됩니다
세상의 염려와 근심, 크고 작은 고난이
평화를 덮어버리는 삶이 아닌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그 어떤 상황과
환경도 그 평안을 빼앗아 가지 못함을
오늘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게 됩니다
그 평안을 주셨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하루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요20:19-31, 새번역]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도 유대 사람들이 두려워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어쩌면 예수님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증언들과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에 의해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갔다’(마28:13) 소문이 나서, 자신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소식으로 인해 더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 같다.
19-20 그 때에 예수께서 와서, 그들 가운데로 들어서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말을 하였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이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부활의 몸으로 예수님은 그들이 모인 장소로 찾아오셨으며, 제자들은 근심에 싸여 있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요16:22)라고 하셨던 말씀처럼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평화와 기쁨은 부활의 몸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처,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여 주신, 이전에는 들어도 알지 못했던 참된 평화와 기쁨이었다.
29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예수님의 죽음을 너무나도 확실하게 목격한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시고 예수님의 두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보고 믿게 하신 것은, 보지 않고도 그들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리로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21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창조 이후 예수께서 다시 불어넣어 주신 숨이, 성령의 호흡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시 시작되었다. 그 숨은,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위로부터 보내주신 성령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증언이 우리에게까지 미쳐 우리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으로 보내졌다. 우리 안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주신 참 평안과 참 기쁨이 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 안에 켜 놓으신 빛과 같아서 숨겨질 수 없으며, 우리가 있는 자리 곳곳에서 그 빛을 밝히며 그 빛을 보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 누구에게든지 죄 용서로 구원을 얻게 하실 것이다. 또 믿지 않는 자들은 죄 가운데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 성령 충만함으로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내 안에 넘치게 하셔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옵소서! 구원은 오직 주께 있사오니, 주께 보냄을 받는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평화와 기쁨만을 전하게 하옵소서!
오 나의 주님
십자가에서 숨이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를 위해 기도 하셨던 주님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죽으시고 십자가에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신 주님
하지만 나의 주님은 부활하셨다 죽음에서 승리하셨다.
주님의 부활이 내 삶의 많은 벽들을 넘어설수 있는 힘을 주신다.
나의 주님은 죽음을 피하실수도 아니 우리를 그냥 죄 가운데 심판 하실수도 있으심에도
친히 사람의 몸으로 우리에게 오시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마침내 부활 하셨다.
그럼에도 닫힌 문을 넘어 제자들 가운데로 오시어 옆구리와 못자국을 보여주시며 부활의 증거를 설명하시고 납득시키신다.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주님은 그가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동원하신다.
심지어 죽음까지 그리고 그 사망을 이기시는 감히 말로 표현할수도 머리로는 이해할수도 없는 부활을 이루어내신다.
주님 주님이 우리에게 보이신 그 부활 소식 하나 만으로도 나의 이 아침이 얼마나 벅차고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오시어 산소망을 주시고 더불어 평강으로 나의 마음을 위로하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나의 닫힌 문을 열어 주님의 평강을 내 삶속에 온전히 받아 들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함께하길 원합니다라고 최근 한 집사님께 인사를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도 그 평안이 등장합니다.
두려움과 염려 속에 문을 굳게 닫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님, 제 안에도 굳게 닫힌 문이 있습니다.
밀어도,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마음의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그 문을 열어 주시고 말씀해 주옵소서.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 평강이 제 안에 머무는 것을 넘어
흘러 넘쳐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해지게 하옵소서.
삶의 고난 앞에 저의 모습 같습니다.
간절히 주님을 찾기 보다는 마음의 문을 닫고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런 제자들 한 가운데로 오신 주님을 봅니다.
이 번 고난 주간 특별집회 중에도 주님께서 두려움에 싸인 제 마음 한가운데로
찾아와 주신 것 같습니다.
고난 중에도 환경이아닌 주님만 바라보기를 다짐해봅니다.
하지만 이제 이 다짐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짐 하지 못하지만
도마에게 찾아오시고 보여주시며 말씀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저의 믿음 없음을 그냥 두지 않을실 주님은 믿기에
그 믿음으로 주님께 조금씩 나아갑니다.
Goodness of God 찬양 가사 중…
Your goodness is running after It’s running after me.
[말씀묵상] 요한복음 20:19~31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한 때 나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기적과 말씀을 보고 들었다면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은 전후에 제자들의 행적을 살펴보자면 과연 내가 그들과 별반 차이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닭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와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을 바라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을 잘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상황이 주어진다고 해도 별반 잘 섬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던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 후 나타나셨다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하고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다면 믿겠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 말 속에는 어찌 죽으신 예수님께서 살아나실 수 있단 말인가하는 의문이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팔 일이 지나서 제자들에게 다시 찾아 오신 예수님은 도마를 향해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에 매달려 정작 복음을 발견하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이 아닌 기록된 말씀을 통해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성숙한 믿음이 내 안에 자리하여, 주님께서 허락하신 '샬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의 은혜를 늘 누리며 살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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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섬기노라 하면서도 눈에 증거를 보여주면 더 잘 믿고 따를텐데 하는 나의 교만한 자아를 깨우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참 진리인 성경말씀을 주셨는데 정작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주님 주신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게 하시고, 그 말씀을 따라 살려 몸부림치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만이 무너진 나를 세우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길을 밝히는 등불임을 고백합니다.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은혜로 보내게 하시고, 아름다운 봄 꽃 가득한 새로운 한 주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문을 닫고 있을 때, 예수께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뒤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확인하게 하시며, 도마의 의심을 통해 믿음의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고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며 복음 증거의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부활을 믿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마입니다. 손으로 만져서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다는 말은 도마만이 아니라 현대를 사는 많은 이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사람 들은 결국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이고 은혜입니다.
저에게도 두려움과 의심이 있었으나 주님의 은혜로 주를 믿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말씀 묵상을 통하여 "평안하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날마다 듣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자로 살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된 삶을 살았던 제자들처럼 이제는 저도 사명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요20:29
"하나님을 내게 보여 줘봐요. 그러면 믿을께요"
하나님을 떠나 방황할 때 제가 어머님께 쏘아붙히듯 뱉은 말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부정을 넘어 원망하고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 하십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실까....그냥 하나님을 보여주시면 모든 불신이 해결이 될텐데....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는 그의 자서전인
한나의 아이(Hannah's Child)라는 책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살아지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믿어지게 되고 신뢰하게 되는 것들이 조금식 생기는 거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먼 얘기 같다가도 내 삶이 되고 실제가 되는 일들이 하나둘씩 생깁니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고백해 봅니다.
"보여 주시지 않는 것이 은혜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깨닫게 하시고 느끼게 해 주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