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나아가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십자가 위에는 빌라도가 써 붙인 명패가 걸려 있습니다
" 유대인의 왕 나세렛 예수" (요19:19)
대제사장들은 이 표현이 못마땅했는지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합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쓸 것을 썼다"라고 말입니다
이 한 문장이 제 마음 깊이 감명을 줍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완전히 알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손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성을 세상 앞에
공식적으로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 위에서 오히려
그분이 참된 왕이심을 선포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조롱의 문구로 걸었지만
인간의 악한 의도조차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역사 안에서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는 패배의 자리가 아니라
왕의 즉위식과 같은 자리가 되며
예수님은 왕관 대신 가시관을 쓰셨고
보좌 대신 십자가에 오르셨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온 세상의 왕으로 선포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던 예수님의 모습은
낮고 낮은 곳으로 초라하지만 가장 위대한
왕으로 향하시게 될 지금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득 하나님께서 직접 빌라도의 손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타내셨던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이 푯말이
제 마음 깊이 스며듭니다
세상적 시선으로는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처럼 보였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 죽음을 통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영원으로 인도하시는
문을 여시고 택함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값진
선물이자 은혜인 "영생"을 주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기록된
왕의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내 삶 위에 기록하신 부르심과
사랑은 무엇인지 소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으며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음에 울컥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십자가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진리를
더 깊이 묵상하게 되는 하루가 될것 같습니다
그렇게 더 깊은 마음을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저의 하루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19:17-27, 새번역]
17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이라 하는 데로 가셨다. 그 곳은 히브리 말로 골고다라고 하였다.
하늘의 지성소에서 영단 번으로 드려질 속죄 제사의 그림자와 모형으로 주신 유대의 속죄 제사와 같이,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우리도 이 세상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완전한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 이 땅에서의 삶을 나그네로 살며, 나의 십자가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곳, 본향을 향한 소망으로 살아야 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사람의 운명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구원과 심판으로 극명하게 갈린 것처럼 모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유일한 소망 되신 예수께 매달리는 삶을 매일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은 장차 올 세상에서 우리가 누릴 영광에 대한 소망이 없이는, 이 땅에서 육신 가운데 살면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순종으로 나아갈 때, 주께서는 나에게 주님 안에 있는 참 평안과 참 기쁨을 주시고 그것을 누리게 하심으로 내 안에 이 소망이 점점 자라나게 하신다. 그 소망이 내 안에서 더욱더 커지게 하시기를.
26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하고 말씀하시고,
27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예수께는 육신의 동생들이 있으셨지만,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끝까지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온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한 가족이 된 지체들을 서로 돌보도록 부탁하신다. 사랑스러운 지체들뿐 아니라 나를 찌르고 아픔을 주는 지체들까지도 사랑하라 하신다. 그것은 내 육신의 욕망을 거스르는,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사랑이지만, 오직 주님의 은혜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 중의 괴수가 나임을 확인할 때, 예수의 옆에 매달린 강도가 나인 것을 깨달을 때, 예수 대신 놓아준 바라바가 바로 나라는 것을 마주할 때 예수 안에 있는 그 사랑이 내 안에서도 시작될 것이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는 점점 더 커지고 나는 점점 작아지는 그 은혜를 내 삶에 허락하소서! 주님께서 뜻하신 대로 나를 빚어가시도록 내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자리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자 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그 영원한 본향을 더욱 사모하게 하시어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기를 기뻐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달아 놓고 끝까지 그를 부인했지만 예수가 입고 있던 마지막 속옷까지 제비 뽑아 빼앗아 간다.
그를 부정하지만 예수가 가진 전부를 가져가려고만한다.
우리의 왕이길 부정하면서도 그의 능력은 취하려한다.
빌라도가 예수의 십자가에 아람,로마, 라틴어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이라 써놓은 푯말은 인간의 조롱이었지만
결국 모든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다.
인류를 구원하지만 가장 가까운 혈육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인간으로서 작별인사를 나누던 예수님의 그 마지막숨에
고통과 슬픔을 우리와 같이 그대로 느끼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주여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시어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그 사랑을 마음깊이 사모하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걸인이었던 맹인에게 예수님은 진흙을 발라 주시며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셨다. 맹인은 이유를 묻지 않고 즉시 순종으로 나아갔고, 그 순종 이후에는 시련도 있었지만 결국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다. 나 또한 순종으로 나아가길 원하지만, 때로는 나의 경험과 생각이 앞서 먼저 행동할 때가 많다.
나의 기준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님, 제 눈이 세상에 가려져 주님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 실로암에 나아가 씻는 순종을 허락하시고, 주님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영의 눈을 열어 주옵소서.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저주받은 곳, 죽음의 장소에 예수님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육의 생각으로는 끌려가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스스로 가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써서 붙인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라는 명패는 조롱하려고 쓴 말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조롱도 진리를 선포하는 말로 사용하셨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의 속옷까지 나누어 가지려고 제비를 뽑지만 그러나 이것까지도 성경에 기록된 일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여자 네 명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십자가 곁에 가까이 서 있습니다. 대부분의 제자들도 떠난 그 자리에 사회적으로 가장 연약은 여자들이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크고 소중해서 어떤 핍박과 손해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진짜 주님을 사랑하면 끝까지 주님 곁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나를 돌아봅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주님 곁에 머무는 삶을 살고 있는가?
고난주간을 지나며 십자가 사랑을 깊이 묵상합니다.
주님이 십자가 사랑으로 나를 살리셨음을 다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주님을 사랑하기에 곁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편안할 때만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서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묵상] 요한복음 19:17~27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당시 십자가에서 처형을 받는 죄수에게는 머리 위쪽에 죄명을 적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인정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기해서 이 상황에 이르게 한 종교지도자들을 조롱하고 모욕할려는 빌라도의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명패는 인간(빌라도)의 악한 의도를 통해서조차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심을 선포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하십니다. 또한 히브리(아람어), 로마(라틴어), 헬라(그리스어) 말로 기록됨으로 예수님이 유대를 넘어 온 세상의 통치자임을 만방에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따라가며,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과정을 바라봅니다. 내 자신을 바라보면 한탄할 수 밖에 없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임재하고 계시기에 구원의 감사와 감격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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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하나님, 어리석고 죄 많은 인생들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의 역사를 쓰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의와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심에 감사드리며, 찬양드립니다. 삶의 순간마다 나의 약한 모습과 지은 죄를 가지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으로 나아가 내려놓고 주님께 고백함으로 죄 사함을 받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믿음을 놓치지 않게 몸부림치는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봄 꽃 향기 가득한 화창한 하루를 허락하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