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 본문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는 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어제 진리가 무엇이냐 묻던 빌라도의 질문에 이어
오늘은 빌라도가 예수께 묻는 한마디에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요19:10)
세상의 눈으로 보면
지금 모든 권세는 빌라도의 손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살리고 죽이는 결정권, 정치적 힘, 제국의 권력,
모든 주도권이 그에게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놀라울 정도로
담대하게 말씀하십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요19:11)
이 말씀은 단지 빌라도를 향한 대답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시는
믿음의 선언처럼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눈앞의 상황은 누군가가 내 삶을 흔들고
결정하고 좌우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직장, 사람의 말, 관계, 환경, 세상의 구조가
내 인생 주권을 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너무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권한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보이는 권력보다 그 위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조차도
우연한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침묵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구의 손 안에 있는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놓으려고 노력하는 빌라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자 했던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그 권한은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왕에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요19:15)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던 이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참 왕이신 예수님 앞에서
세상의 왕을 선택합니다
고난주간을 맞아 단순히 의례적으로 지나는
이벤트로 퇴색 되어 가는 부활절을 앞두고
하나님께서는 지금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계신 듯 합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세상의 평가, 안정, 성공, 두려움이
왕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예수님의 고통과 십자가, 부활 사건이
옛적 어느 한때에 있었던 일로
“생각"하는 것에서 멈추고 마는
형식적 믿음의 이벤트가 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진짜 권한을 가지신
진정한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 거하는 매일 매일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요18:39-19:16, 새번역]
4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18:38, 19:6)
14 그 날은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15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16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를 넘겨받았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세 번이나 선언했다.
유월절 준비일에, 대제사장들에 의해, 아무 죄도 없는, 흠 없는 유월절 어린양이 준비되어 그에게 인류의 모든 죄가 전가되는 현장이다.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았다는 것은 당시 세상을 대표하는 왕, 로마 제국의 황제를 대리하는 행위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다’고 했던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부인하고 세상 권세, 죄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음을 스스로 시인한다. 이리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인류가 죄 아래 놓였음이 드러나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로마의 공식적인 재판정에서 인류를 대표하는 죄인으로 십자가에 처형판결을 받으신 것이다.
땅에 있는 제사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그림자에 불과한 모형인데 그 모형의 참된 실체가 있는 하늘의 성소에서,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모든 죄를 단 한 번의 진정한 속죄 제사로 도말하시기 위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에게 모든 죄가 전가되었다.
천상의 존재들과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그 팽팽한 긴장감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다. 인류 최악의 범죄 현장이,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 가운데,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려는 그 높으시고 완전하신 뜻이 성취되는 현장이 되는 것이다. 구원과 심판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듯이 죄가 많은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서 이 작은 자에게도 그 은혜가 살아 역사하게 하시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합니다! 그 놀라운 대속의 은혜가 내 안에 계속되게 하옵소서. 그 은혜에 붙들려서 살게 하옵소서.
어리석은 빌라도 자기 자리에 욕심있는 자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는자!
오늘 말씀을 통해 보는 빌라도 이다.
한 순간의 결정이 수천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영원히 기억 되는 어리석은 결정이다.
나도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아침이다.
(7절 유대인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이 유대인은 당연히 천국 가는 소망이 절대적
으로 있었을 것이다.
천국으로 인도 할줄 안 그 법이 이들에게
빌라도 보다 더 큰죄가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나 에게도 예수의 사랑을 믿고 있지만 법에
전통에 묶여서 예수의 사랑은 없고 죽어 있는
신앙으로 지식으로 가득차 잇지는 않는지
묵상하고 기도한다.
나는 예수님과 나 스스로를 죽이는 올무에
갇혀 살지 말게 하옵소서.
나의 신앙과 믿음을 선한 곳에 내어 줄수 있게
하옵소서.4월 여정이 주님과 함께 하는 여정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홀로 십자가에 달라지 않으셨다. 그의 옆에 함께 못박힌 강도 예수 바라바 이름마저도 같았다니 놀랍고 신기하다.
가장 악한 죄인의 처형자리에 예수님을 벌거벗겨 함께 메달아놓은 장면은 끝까지 예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깎아 내리려 몸부림치는것만 같다.
우리의 수치와 죄를 대신해 살점이 찢어지는 고통속에 세상죄와 함께 들어올려지셨다.
빌라도는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에 두려워 하지만 예수님은 나를 넘겨준 자의 죄가 더 크다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선하게 받아들이신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향해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외치는 군중속에 나의 죄가 함께 서있음을 고백한다.
가이사에게는 충성함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처형 할수 밖에 없는 우리의 무지함과 연약함까지 사랑하시는 주님
고난주간 주님께서 느끼셨을 그 수치와 고통 그 넘어의 사랑에 겸허히 마음을 다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
[말씀묵상] 요한복음 18:39~19:1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음을 알기에 유월절 전례를 따라 놓아 주도록 제안했지만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의 반발로 바라바를 놓아주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예수님은 강도인 바라바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그 바라바를 구원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바라바와 별반 차이가 없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십자가 형벌을 주님께서 기꺼이 감당하심으로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신 것입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죄 많은 나를 향하신 그 큰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깊이 깨닫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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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바라바와 같이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던 빌라도
결국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부담을 뿌리치지 못하고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고 만다. 빌라도는 자신에게 생사의 권한이 있다고 여겼고 또 재판석에 앉아 있었지만, 그는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더라. 딱 거기까지 였다.
얼마 전 다락방 공과였던 맹인이었던 자가 떠오른다.
육신의 눈과 함께 영안을 뜨게 된 그는 바리새인들의 추궁과 핍박과 장차 당하게 될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는 바 예수님을 당당히 증거했다. 빌라도의 눈은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셈법을 향하고 있었고 맹인이었던 자는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고 붙잡았다.
주님, 한가지 아는 것, 그 아는 것을 단단히 붙잡는 단순한 믿음을 구합니다. 여러 생각들과 붙잡은 것들로 정말 붙잡아야 할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묵묵히, 친히 고난의 자리에 서신 예수님의 순종을 기억하며 내가 선 자리에서 낮아지며 겸손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