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읽다가 마음에 가장 깊이 들어온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 장면입니다
겉으로 보면 지금 이 자리는
재판관이 죄인을 심문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실제로는 예수님게서 빌라도를 향해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이렇게 되물으십니다
"이 말을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이 말씀 앞에서 저의 시선이 한참을
머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나에게 질문하고 있는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말로
예수님을 알고 있는가?
사람들이 말하는 예수님
설교를 통해 들은 예수님
책 속에서 기록된 예수님이 아니라
정말 내가 직접 만난 예수님은 어떤분인가?
자문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신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새 내 고백보다
남의 고백이나
지금이 아닌 요즘 말로 "라떼"의
과거의 고백으로 주님을 알고 있는
"상태"로만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 보게 됩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예수님을 고발한 유대인들과 재판장들이
굳게 믿고 있었던 세상은
힘으로 다스려지고, 권력으로 사람을 움직이며
두려움으로 질서를 세우는 나라인 반면
예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다스리시고
진리로 사람을 이끄시며
십자가로 왕권을 나타내십니다
세상의 왕은 자신을 위해 백성을 희생시키지만
예수님은 백성을 위해 자신 전부를 내어 주시는
왕이십니다
오늘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라"라고 말입니다
이어 빌라도는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이 장면을 상상해 보며
참으로 묘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지금 바로 그의 눈 앞에
서 계시는데 빌라도는 진리를 묻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 칭해지는 우리 역시
이와 닮은 모습으로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서
끊임 없이 답을 찾고 계속 질문을 던지지만
정작 진리이신 예수님, 말씀이신 예수님 앞에
머무르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말씀보다 정보가 많고
기도보다 생각이 앞서며
주님의 음성보다 세상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릴때가
있습니다
오늘 묵상을 하며 저에게 질문을 남겨봅니다
나는 진정 진리를 찾고 있는가
아니면 진리이신 주님 앞에 머물고 있는가
오늘 하루도 세상의 현실에 매몰되어
답을 찾기 위해 분주한 것이 아닌
주님의 음성 앞에 잠잠히 머무르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서
이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복된 하루 하루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18:28-38, 새번역]
28 사람들이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관저로 예수를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예수를 잡아,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로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려는(신21:23) 자들은, 유월절 음식, 뼈를 꺾지 않은 어린 양고기,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고난의 떡인 무교병, 쓰디쓴 고통을 상징하는 쓴 나물을, 몸을 더럽히지 않고 먹기 위해, 밤이 새도록 쉬지 않고 일을 하며,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준비한다.
36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유대의 지도자들은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그들의 권세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밤새 수고하지만, 그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죄가 되고, 그들의 수고는 결국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쓰여진다.
죄인의 재산은 의인에게 주려고 쌓은 것이다. (잠13:22, 새번역)
하나님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슬기와 지식과 기쁨을 주시고, 눈 밖에 난 죄인에게는 모아서 쌓는 수고를 시켜서, 그 모은 재산을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주시니 (전2:26, 새번역)
우리의 수고가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수고인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 평생을 수고하고도 하나님께 기억되지 않는 헛된 수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가 온전히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귀한 인생이 어디에 있을까!
37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육신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누리며, 더욱더 주님을 갈망하여 자신을 더욱더 주님께 내어드리기를 바라게 되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만이, 오직 진리 안에서 나를 그렇게 빚어가실 수 있다.
34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주님!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하나님 앞에서 귀한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내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다스려주옵소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끌고 총독 관저로 갑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자,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하시며,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말씀하십니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조롱이었고, 그는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께 무관심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로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진리는 우리 안의 위선과 죄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불편합니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진리를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고, 세상에서의 지위와 안위를 지키기 위해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나는 진리를 아는 자인가?' 더 나아가 '나는 진리를 따르는 자인가?'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봅니다. 말씀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진리는 알지만 여전히 손해 보기 싫어하고, 그래서 때론 진리를 외면하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겉은 신앙인 같지만 상황에 따라 진리를 외면하고 사는 가짜 신앙인이 되지 않길 원합니다.
진리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랑하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진리가 나를 불편하게 하여도, 진리를 따르며 살겠습니다.
진리를 사랑하기에 겪어야 할 고난과 손해를 기꺼이 감당하는 오늘 하루 되게 하여 주옵소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리이신 주님이 그들 앞에 서 계셨지만
그들은 끝내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것이 되는 것도 아니고
진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언제부터
주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이제는 분명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수없이 나를 다루시며
대장간의 무쇠처럼 달구고 두드리시고
만지시고 살피시며
지금도 나를 주님의 도구로 만들어 가고 계신다는 것이다.
주님,
주의 진리와 손길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움직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피로 하루하루를 유월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내일을 미래를 소망하며 살아왔지만 주님이 빌라도의 신문 앞에서 당당하게 하시는 말씀 속에
나의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주님의 피값임을 오늘도 되새겨 봅니다.
오늘도 주님의 진리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