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10시간 이상 앉아서 학교 과제를 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 간듯 합니다
오늘은 줌으로 라이브 컨퍼런스가 있어
발표를 해야 하고
오후에는 한국 커피믹스를 무지 좋아하는
인도 목사님께 커피를 보내드려야 해서
우체국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과제, 최종 보고서를 위해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가끔 급작스레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서
숨이 턱 막힐 때도 있지만
어찌 어찌 가을 학기를 무사히 마쳐가고 있음에
감사한 아침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성벽 재건 이후
영적, 사회적 안정화를 위해
예루살렘 인구 재편과 공 동체 재배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비 뽑기를 통해 10명 중 1명씩을 예루살렘에
거주시키는 방식으로 시작되는데 그 중에
자원하여 예루살렘에 거주한 사람들도
보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 느 11:2 -
예루살렘에 거주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것이고
불편과 헌신이 요구되는 일이었기에
선뜻 거주하겠다고 나서는 자들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리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
하는 물음이 올라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다는 것은
단지 이주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
나의 삶의 중심을 옮기는 결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내가 익숙했던 곳, 익숙했던 사람들을 떠나는 것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헌신이 필요한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자원하여 그곳으로 갔던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가장 우선순위가 무엇이며
가치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중요한 결단이
드러난 실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나에게 지금 예루살렘은 어디일까?
자문해 봅니다
그곳은 장소일 수도 있지만
내게 허락하신 영혼들을 돌보는 일일 수도 있겠고
혹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의 순종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저에게 주어진 일과 중에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마음이 향하고 시선이 향하는 곳
그곳이 바로 예루살렘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보내는 오늘이라는 시간 안에
제 마음이 "나"에게로가 아닌 하나님께로 향하는
일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사 52:7 -
[느11:1-36, 새번역]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10:39)
성전과 성벽은 세워졌지만,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버려진 땅과 같은 예루살렘 성읍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기 위해 그곳으로 이주해서 살 사람들을 결정한다.
먼저 자원한 백성의 지도자들 중에는 성전을 지킬 용사들과 성전의 일을 맡아보는 제사장들, 하나님의 성전 바깥일을 맡은 레위 사람들, 감사의 찬송과 기도를 인도하는 지휘자들이 있다. 나머지 백성 중에서는 제비를 뽑았고,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들 중에 어디에 속하는 성도일지 생각해 본다.
스스로 예루살렘에서 살겠다고 자원하는 사람 중 하나일 것 같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바벨론 땅에 사로잡혀 간 자처럼 하나님의 성전 없이, 공동체와 떨어져 살면서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가 되어 말라 쓸모없이 버려진 삶을 체험했다.
차츰 하나님과의 교제가 사라졌다. 점점 마음이 둔해져서 말씀과 기도 없이 생활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집을 짓고 곳간 채우는 일에만 몰두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배움으로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었지만, 차츰 나의 영혼이 메말라가는 것이 느껴졌고, 겉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숨이 많아지고 삶에 생기가 사라져 반복되는 삶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한 목사님으로부터 중보 기도 요청을 받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게 되었다. 그때까지 나는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된 것같이 여겨졌었다. 그런데 그때, 다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여전히 내 곁에 계셨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막이 걷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하나님을 그렇게 찾고 있었는 줄도 몰랐었는데, 하나님이 여전히 곁에 계신 줄을 알게 되고 나서야, 잃어버렸던 엄마를 다시 만난 아이처럼 잠시도 손을 놓지 못하고 울고 또 울었다.
그 이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하남153 공동체의 가족이 되었다.
이제 막 성전이 세워져서 일꾼이 많이 필요한 곳이어서 내게는 너무 다행이었다.
‘나와 같은 자에게도 할 일이 있구나!’
새로 생기는 자리마다 여기저기 무리에 끼어있다 보니, 요즘 어느 분은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도 하세요? 여기저기 모임마다 안 보이는 데가 없네요?”
내게 주신 새 예루살렘이 점점 많은 분으로 아름답게 채워지고 있다.
자원하는 분들이 많아서 골고루 일이 맡겨질 때까지 나에게 빈틈의 일부를 메우는 은혜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시니 이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복이요 기쁨이요 감사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 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성벽이 완성되었지만, 상대적으로 그 성읍을 지킬 만한 주민이 적어 안전에 취약했고, 거주할 만한 가옥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도자들을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게 했고, 나머지 백성은 자원하는 사람들과, 제비 뽑기를 통해 뽑힌 십 분의 일의 사람들을 예루살렘에서 살게 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두 가지 묵상포인트를 발견합니다.
첫째, 지도자들의 솔선수범입니다. 그들은 책임을 다하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지도자들이 본을 보여야 합니다.
둘째, 제비 뽑기를 통한 결정입니다. 이는 결정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어떤 결정이 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힘겨운 일이지만 지도자들이 솔선수범을 보였고 백성들은 기꺼이 하나님의 뜻에 승복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자리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된 자리인 줄 믿고 기꺼이 헌신하는 것이 믿음의 태도입니다.
일상의 편안함 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일에 기쁨으로 헌신할 때에 나의 자리가 거룩한 예루살렘 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느헤미야 11장을 보면, 예루살렘은 단순히 건물만 다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잊혀졌던 공동체가 다시 재건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충성할 때 예루살렘 공동체가 살아났듯이, 오늘 우리의 공동체도 동일한 원리 속에 있다. 공동체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각자가 맡은 사명을 성실히 감당해야 한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아내, 자녀가 각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을 때 그 가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다. 작은 공동체인 가정이 올바르게 세워질 때, 그 작은 공동체들이 모여 교회라는 더 큰 공동체를 이뤄간다. 그러나 매일의 삶 속에서 이 작은 공동체를 올바르게 세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주님, 우리 가정의 제사장이시며 참된 가장이신 주님께서 지체 한 사람 한 사람을 올바르게 세워 주옵소서.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들을 충성되게 감당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우리의 가정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말씀묵상] 느헤미야 11:1~36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며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었지만 여전히 성 안은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전을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중심도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도성을 세우기 위한 거주민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먼저 백성의 지도자들이 자원하였고, 남은 백성 중에 십분의 일을 제비뽑아 거주하게 하였다. 나머지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살면서 예루살렘에서 불편을 감수하며 성읍을 세우는 사람들을 위해 복을 빌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아름답게 지어져 가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들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하는 지도자들의 행동하는 리더십이다. 이것이야말로 공동체의 호응을 얻고 함께 헤쳐나가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그리하여 함께 지어져 가는 하남153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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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공동체 안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 말과 혀로만 일하지 않게 하시고, 행동으로 주님의 공동체를 섬기게 하소서. 공동체를 위하여 내가 마음을 다해 일하게 하시고, 공동체가 든든하게 세워져가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새 날을 주심에 감사하옵고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남은 백성은 제비를 뽑아 그 거주지를 정하였다.
모두가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싶었을것이다 그럼에도 제비를 뽑아 주어진 결과에 순응하고 서로를 위해 복을 빌며 기도한다.
뒤이어 예루살렘에 정착한 사람들의 계보가 이어진다. 자손의 아들의 손자로 이어지는 계보는 분명 스스로 결정한 자리가 아닌 태생으로 결정된 사람들이다.
우리가 부모를 또는 자녀를 자유롭게 선택할수 없지만 그 맡겨진 계보에 순응하며 살아감 또한 감사의 시작이 아닐까싶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스스로를 옥죄거나 자책하는 마음까지 허락하신건 아닐까?
지난주일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돌아보게 하심을 고백한다.
베드로가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을 그를 반석으로 세우시고 내양을 먹이라 하신다.
베드로가 스스로 주님을 배반했다 생각했지만 주님은 그를 친히 넘어트리셨다.
그렇게 그를 가장 낮은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게 만드시고 다시 그를 불러 세우신다.
주님은 실패한 자가 다시 일어설때 그의 넘어짐을 통해 세상을 위로하며 주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게 인도하신다.
이 말씀이 깨달아 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주님은 베드로를 주님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 넘어뜨리신것이다.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지만 주님은 그를 친히 불러 나를 사랑하느냐 거듭 물으신다. 주님은 모든것을 알고 계셨던것이다.
나를 따르라.
유난히 공부할 것이 많은 이 교회로 나를 왜 부르셨을까?
요한복음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사람 낚는 어부 공동체 153으로 부르신 주님의 사랑이 내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피하려고 해도 결국엔 선교의 자리로 나아가는 선교사님의 자녀들의 삶 그리고 산골 오지에서 할머니 몇분과 예배 드리는 젊은 목사님 부부 굽이굽이 돌고돌아 다시 목회의 자리로 나올수 밖에 없었다 매주 눈물로 고백하는 우리교회 목사님까지
모두 주님이 넘어뜨리시고 다시 세우신 사명을 몸부림치며 감당하시는 분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나의 의지가 아닌 주님의 부르심으로 이 자리에 세우셨음을 믿는다.
주님 나는 지금 넘어지고 깨지고 있지만 그역시 주님의 부르심을 위한 실패임을 믿습니다.
실패한 자가 실패한 자를 위로하며 넘어진자가 넘어진자의 마음을 알기에
주님이 나를 부르신 자리에 나의 이 혼돈을 기꺼이 감사로 순종하겠습니다.
더 주님의 말씀 앞에 깨지고 부등켜 안고 흔들리며 이끄심을 바라보겠습니다.
우리를 통해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하소서
나를 부르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