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0:1-21, 새번역]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아 보게 된 사람을 불러 회유하며 네가 보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인정해 줄 테니 예수가 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했으나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누가 자신의 참 목자인지 분별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성령께서 문지기로 계시며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게 하신다. 나의 참 목자이신 주님은 내 삶의 기준이 되어주시고 그 기준에 따라 살며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사는 참자유를 주신다.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없고 주님 앞에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이 된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위선으로 포장된 마음까지도 벗기지 않으면 주님 앞에서 어떻게 거리낌 없이 살 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일 또한 내가 할 수 없고 주님께서 나의 목자가 되어주시며 그 음성을 들려주실 때 내 맘을 돌이키게 하시기를 반복하며 나를 고쳐주신다.
11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신 것, 아무도 주님의 그 깊으신 뜻을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묵묵히 성경 말씀을 하나하나 성취하시며 십자가의 길까지 걸어가신 그 자취들이 나의 마음을 찔러 아프게 하고 나로 할 말이 없게 하신다. 이미 나의 목자되신 주님께서 나보다 앞서가신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고 갚을 길 없는 눈물만 흐른다.
14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그 당시 아무도 알지 못하던 주님의 마음을 알아드리고 싶다. 예수께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신 아버지의 마음을 아신 것과 같이 아버지께서, 이 땅에 사신 예수님의 마음을 아신 것 같이 나도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
18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목숨을 버리고 얻을 권세가 모두 주님께 있으셨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예수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 나의 순종도 주님을 본받아 자발적인 순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 아버지와 아들의 교통하신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줄 나로 더욱 깊이 알게 하옵소서! 그 사랑을 입은 자로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양의 우리 앞예 서 게시는
예수님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마리 한마리
양들이 우리로 들어갈때마다 이름을 불러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한 얼굴이 연상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5개의 단어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요10:7)에서
"문"이라는 키워드가 보입니다.
문은 경계이며 안과 밖으로 나뉩니다
저는 이 문이 마치 성경책의 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말씀을 덮고 있는 표지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통하지 않고
다른길로 넘어가는자,
즉 말씀의 자리에 서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다른 길로 넘어가려고 시도를 하는 자들로
바로 "도둑이요 강도"라 말씀하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구원은 오직 말씀이신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문지기가 목자에게 문을 열어준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문득 문지기가 성령님처럼 느껴집니다
성령님께서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말씀은 그저 글자에 머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목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문이신 예수님, 목자이신 예수님, 그리고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
결국 구원의 통로이신 에수님을 묵상해 봅니다
문득 저는 예수님의 음성을
제대로 알아 듣고 있는가?
자문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너무나 익숙한 소리들로 인해
정작 들어야 할 음성이 잡음처럼 느껴지지는
않는지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그 소리는 그냥
"잡음"에 불과합니다.
진정 들어야 할 음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매일 매일 점검해 보아야 겠습니다
네번째 "양"인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성경의 지식이 아닌 "예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찾아보니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헬라어 ‘γινώσκω’는 경험적이고 인격적인
앎이라고 합니다.
즉, 말씀을 읽는 것만으로는 그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형식적이고 의무로 하는 독서 수준의 읽기가
아닌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그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두 부류를 보게 됩니다
여전히 거부하며 예수님을 미친 사람 취급하는
유대인들과 반신반의 하는 사람들로 말입니다.
오늘 이 두 부류의 태도를 보면서
말씀 한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 왕상 18:21 -
여전히 망설이고 때론 세상에 발을 걸치게 되는
나의 죄성을 회개합니다
매일 매일의 생각이 세상이 아닌
말씀을 향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씀에 붙들려 사는 제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예수께서 목자와 양의 관계를 비유하시며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르며,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문이 되셔서, 들어오고 나가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며 좋은 꼴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유일한 통로이며, 생명의 피난처이십니다.
삯꾼은 위기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품삯을 받고 양을 돌보는 사람은 목자가 아니고, 또 양도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주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던지셨습니다. 그 희생 덕분에 우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지만, 나는 깨닫고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만 듣고 따르겠습니다.
내가 들어가고 나가는 문(삶의 기준)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닮은 '작은 목자'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이며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시 선언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묵상하며 깨닫게 된다.
주님이 말씀하신 풍성함은 물질적인 넉넉함이 아니라
목자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생명과 안전임을 말이다.
양이 문 안에 있을 때 보호받듯이,
주님 안에 거할 때 참된 평안이 있다.
말씀을 붙들고 있다 보니
이번 순장 임명장에 적혀 있던 한 단어가 마음에 떠올랐다.
‘작은목자.’
목자라는 자리는 단순한 직분이 아니라
양을 지키고, 바른 길로 인도하며,
위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자리임을 느끼게 되었다.
순장이 바로 그런 자리임을 간절히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작은 목자일 뿐이다.
참 목자는 오직 주님이시다.
나는 양의 문이 될 수 없고
오직 양의 문이신 주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이다.
내가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할 존재임을 고백한다.
주님,
제가 작은 목자입니다.
양의 문이신 주님께 온전히 통과하는 은혜와 능력을 주옵소서.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며 인도하게 하옵소서.
살아가다가 마음속 늑대를 만날 때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목자이신 주님을 더욱 찾게 하옵소서.
길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작은 목자 되게 하옵소서.
[말씀묵상] 요한복음 10:1~21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당신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시면서 목자와 양(성도)과의 관계를 흡사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권능, 영광, 본질에 있어 완전히 동등하시며 격만 다를 뿐입니다. 따라서 두분의 깊은 관계를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로 확장하는 본문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측량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자녀로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예수님께서 과연 계신가'하는 발칙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고 내 뜻이 좌절될 때 또는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일텐데, 주님께서 거짓말을 하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양)에게 진정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알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성도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깨닫는 순간,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고도 친밀한 관계가 우리와 예수님 사이에 형성될 것입니다. 우리을 위해 사람을 형상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예수님을 사랑을 묵상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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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누구를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알아가는 것은 소통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내가 말씀과 찬양을 통해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시고, 이로써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이를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하시고, 이 세상을 주님의 사랑과 영광으로 채우는데 자그마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사용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새 날과 좋은 날씨를 주셔서 누리게 하심에 감사합니다.